11일 관세청에 따르면 9월 1~10일 수출액은 349억 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82.6% 늘었습니다. 직전 최고 기록은 올 7월의 300억 달러였습니다. 두 달 만에 갈아치운 셈입니다. 주역은 반도체입니다.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은 164억 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70.1% 급증했습니다. 7월 기록한 종전 최고치 112억 달러를 47.1% 웃도는 역대 최대입니다. 전체 수출 증가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은 약 76%였습니다. 수출이 늘어난 네 몫 중 세 몫이 반도체 한 품목에서 나왔습니다.
고용 쪽 숫자는 다른 방향입니다. 8월 전체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8만 4000명 늘었습니다. 그런데 제조업 취업자는 3만 8000명 줄어 26개월 연속 감소했습니다. 청년층 취업자도 14만 3000명 줄며 46개월째 내리막입니다. 2년, 4년 가까이 이어진 흐름입니다. 소비도 마찬가지입니다. 7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2.4% 감소했습니다. 8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4.5로 한 달 새 2.3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수출 기록이 두 달 만에 경신되는 동안, 체감 지표는 뒷걸음질했습니다.
왜 이렇게 벌어졌을까요. 한국은행 분석에 답의 일부가 있습니다. 반도체 부문에서 최종수요 10억 원이 발생할 때 국내 전 산업에서 늘어나는 취업자는 2.4명입니다. 제조업 평균은 5.1명입니다.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생산으로 번지는 힘도 약합니다. 반도체의 생산유발계수는 1.500, 제조업 평균은 1.975입니다. 반도체에서 최종수요 10억 원이 생기면 국내 경제 전반에서 총 15억 원의 생산이 유발되는데, 제조업 평균은 19억 7500만 원입니다. 약 24% 낮은 수준입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조선이나 석유화학은 생산이 늘면 여러 협력 업체와 부품 업체로 효과가 퍼지지만 반도체는 그런 연결고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며 "대기업의 수출 실적이 좋아져도 중소기업과 내수로 확산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출 온기가 소비까지 오는 길목에는 또 하나의 벽이 있습니다. 가계부채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가계신용은 2019조 8000억 원으로 전 분기보다 25조 9000억 원 늘었습니다. 가계신용은 가계대출과 카드 외상거래를 합친 가계부채 총량 지표입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연속 올려 대출금리 상승 압력도 커졌습니다. 명목소득이 늘어도 원리금 상환과 주거비·생활비를 빼면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제한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수출이 늘면 1~2분기 뒤 내수가 증가했지만 최근에는 그 시차가 4~5분기로 길어졌다"며 "기업의 수출소득이 국내 투자나 고용·임금으로 연결되는 정도가 과거보다 약해진 영향"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정부 판단은 다릅니다. 부문별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내수 전체는 지난해 1분기를 저점으로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입장입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수출과 투자 호조에 따른 기업소득과 자산소득 증대 효과가 가시화되면 내수도 점차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출 숫자와 내 체감은 같은 시점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두 교수의 진단이 엇갈리는 지점도 '연결 여부'가 아니라 '연결에 걸리는 시간'과 '연결의 세기'입니다. 그래서 뉴스에서 수출 기록 경신을 봤을 때 함께 확인할 지표가 있습니다.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제조업 취업자 수와 소매판매, 한국은행이 분기마다 집계하는 가계신용입니다. 이 셋이 방향을 바꾸는지가 체감경기의 실제 신호입니다. 열흘에 349억 7000만 달러라는 기록이 나온 그 달, 제조업 일자리는 26개월째 줄어 있었습니다. 두 숫자를 같이 보는 것이 지금 경기를 읽는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