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4일, 국내 신용융자 잔액은 38조 6,000억 원이었습니다. 연중 최고치였습니다. 한 달 뒤 이 금액은 15.4% 줄었습니다. 주가가 급락하고, 담보가 부족해진 계좌가 강제로 정리된 결과였습니다. 그 사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한국 증시 평가는 두 번 바뀌었습니다.
블랙록 투자연구소(BII)는 2026년 9월 14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등 신흥시장 주식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올렸습니다. 근거로는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기업 전반의 실적이 견조하다는 점, 한국이 반도체와 메모리 공급망의 주요 경로에 있다는 점, 그리고 기업 이익 성장률에 비해 주가 수준이 낮다는 점입니다. 블랙록은 이런 특징이 신흥시장 주식의 초과수익을 이끌 것으로 봤습니다. 이는 블랙록 자체 판단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언급은 아닙니다.
블랙록은 2026년 6월 30일, 같은 신흥시장 주식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내렸습니다. 당시 지적한 문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국내 증시가 반도체와 인공지능 종목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점, 그리고 한 종목에 빚을 몰아 투자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블랙록은 이 조합이 변동성을 키워 수익 구조를 악화시킨다고 봤습니다. 하향 시점은 신용융자 잔액이 연중 최고치를 찍은 6월 24일로부터 엿새 뒤였습니다. 그리고 약 3개월 만에 의견이 되돌아왔습니다.
신용융자는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거래입니다. 주가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담보가 부족해지고, 증권사는 해당 주식을 강제로 팔아 빌려준 돈을 회수합니다. 반대매매입니다. 문제는 이 매도가 주가를 다시 끌어내리고, 그 하락이 또 다른 계좌의 반대매매를 부른다는 점입니다. 빌린 돈이 많을수록 이 연쇄가 길어집니다. 6월 24일 이후 한 달간 잔액이 15.4% 줄어든 것은 이 연쇄가 실제로 작동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블랙록은 보고서에서 "여름철에 이뤄진 디레버리징이 한국 증시 변동성을 키우던 레버리지 우려를 완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디레버리징은 투자에 쓰인 빚을 줄이는 과정을 말합니다.
의견이 상향됐다고 6월에 지적된 문제가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블랙록이 완화됐다고 본 것은 레버리지 우려입니다. 반도체·AI 종목 쏠림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설명은 이번 보고서에 없습니다. 오히려 블랙록은 한국이 반도체·메모리 공급망의 주요 경로에 있다는 점을 상향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같은 집중도가 위험 요인에서 기대 요인으로 위치를 옮긴 셈입니다. 블랙록은 조건도 함께 달았습니다.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려면 견조한 이익 성장률과 낮은 주가 수준이 거시경제 불확실성에서 오는 위험을 상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블랙록이 제시한 수치는 비교값으로 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첫째, MSCI 신흥시장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 증가율은 34.2%입니다. 같은 기준 MSCI 미국 지수는 20.3%로, 신흥시장이 14%포인트가량 높습니다. 둘째, 신흥시장 주식의 선행 12개월 주가수익비율은 약 10배입니다. 주가를 앞으로 1년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으로 나눈 값입니다. 미국 주식은 19.9배로, 신흥시장이 약 50% 낮습니다. 다만 이익 증가율은 확정 실적이 아니라 전망치입니다.
블랙록의 판단 근거는 개별 종목의 주가가 아니라 세 개의 숫자였습니다. 신용융자 잔액, 예상 이익 증가율, 그리고 선행 PER입니다. 그중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신용융자 잔액이었습니다. 38조 6,000억 원에서 한 달 만에 15.4%가 줄어든 그 숫자입니다. 6월 하향과 9월 상향 사이에서 바뀐 것은 기업 실적보다 시장에 쌓인 빚의 크기였습니다. 글로벌 운용사의 의견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매 권고가 아니라 지수 단위 비중 조정 판단입니다. 이 구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이번 발표를 읽는 출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