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중앙에 사실상 가격표 하한선이 정해진 만큼 향후 매각 협상은 이 숫자를 출발점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가 15일 내놓은 말입니다. 드라마 제작사 SLL중앙이 새 투자를 받으면서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4000억 원 중반대였습니다. 5년 전 같은 회사에 붙었던 숫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가 남긴 무게는 투자 한 건보다 훨씬 큽니다.
15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SLL중앙은 사모펀드 운용사 큐리어스파트너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4000억 원 중반대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조건을 바탕으로 큐리어스파트너스는 SLL중앙이 새로 발행하는 전환사채 500억 원어치를 인수합니다. 전환사채는 나중에 조건에 따라 그 회사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빚 증서입니다. 여기에 기존 투자자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가 갖고 있던 전환우선주 550억 원어치도 사들입니다. 보통주로 바꿀 권리가 붙은 우선주입니다. 두 건을 합쳐 총 1050억 원 규모입니다.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는 2021년 SLL중앙의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습니다. 당시 기준은 1조 원대 기업가치였고, 이를 근거로 전환우선주 3000억 원어치를 매입했습니다. 올해 초 SLL중앙이 글로벌 운용사 아레스매니지먼트와 투자 유치를 협의할 때는 1조 원 중반대 기업가치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논의 테이블 위 숫자가 4000억 원 중반대로 내려온 셈입니다. 업계 일각에서 예상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중앙그룹 계열사 대부분은 현재 회생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SLL중앙의 모회사인 콘텐트리중앙도 포함됩니다. 회생절차에서는 법원이 선임한 조사위원이 회사 자산 가치를 따로 평가합니다. 콘텐트리중앙의 주요 자산 가운데 하나가 바로 SLL중앙 지분입니다. 이번에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된 4000억 원 중반대라는 값이 그 평가의 유력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회생절차에서 주요 자산을 처분할 때는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채권자에게 청산가치 이상을 보장해야 합니다. 조사위원 평가액을 밑도는 가격은 채권단 동의와 법원 인가를 얻기 어렵습니다.
돈이 오갔지만 두 회사가 손에 쥐는 것은 다릅니다. SLL중앙은 전환사채 발행 대금으로 이달 23일 만기가 도래하는 공모채 350억 원을 상환합니다. 당장의 유동성 문제를 넘기고 경영권 매각까지 시간을 벌게 됐습니다. 반면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는 이번 매각 대금 전액을 인수금융 상환에 넣기로 했습니다. 현재 기업가치 수준에서는 보유 지분을 전량 처분해도 인수금융을 갚는 데 그칠 것으로 추산됩니다. 2021년에 1조 원대를 기준으로 들어왔던 투자자의 퇴장 조건입니다.
큐리어스파트너스는 중앙그룹 오너 일가로부터 BGF리테일 주식 등 약 1300억 원 규모의 담보를 확보했습니다. 투자 원금 1050억 원을 웃도는 규모입니다. 진입 가격까지 낮추면서 손실 가능성은 줄이고 기대수익은 키운 구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큐리어스파트너스는 향후 인수합병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며 내부수익률 10% 중후반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입니다. 내부수익률은 투자 기간을 감안해 연 단위로 환산한 수익률 지표입니다.
앞으로 나올 SLL중앙 관련 숫자는 모두 4000억 원 중반대를 기준선으로 읽으면 됩니다. 중앙그룹에 대한 법원 조사가 마무리되면 SLL중앙 경영권 매각 논의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확인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법원이 선임한 조사위원이 콘텐트리중앙 보유 SLL중앙 지분에 어떤 값을 매기는지, 그리고 실제 매각 협상가가 이번 4000억 원 중반대보다 위에서 시작하는지입니다. 5년 전 1조 원이라는 숫자는 이제 협상장에 없습니다. 남은 것은 15일에 새로 적힌 숫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