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밀던 법을 대통령의 수익이 막았다 찬성 49표, 반대 50표. 미국에서 가상화폐를 처음으로 제도권 금융 상품으로 규정하려던 법안이 멈춰 선 숫자입니다. 본회의로 넘기려면 60표가 필요했습니다. 이 법안을 가장 앞에서 밀어온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리고 법안을 멈춰 세운 쟁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수익이었습니다.
미국 연방 상원은 15일(현지 시간) 가상화폐 시장구조법, 이른바 클래리티법을 본회의에 부치기 위한 절차 표결을 진행한 결과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부결됐다고 밝혔습니다. 법안을 진행시키는 데 필요한 60표에 10표 모자랐습니다. 이날 민주당 의원 전원이 반대했고, 공화당에서도 수전 콜린스(메인), 조시 홀리(미주리) 의원 등이 등을 돌렸습니다. 현 상원은 공화당 53석, 민주당 45석, 민주당 성향 무소속 2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같은 법안은 2025년 7월 연방 하원에서 찬성 294표, 반대 134표로 통과됐습니다. 공화당 주도에 민주당 일부까지 가세한 초당적 표결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가상화폐 업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상원을 향해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습니다. 하원에서 두 배가 넘는 표차로 통과된 법안이, 1년여 뒤 상원 문턱에서 한 표 차의 다수 반대에 걸려 멈춘 셈입니다.
클래리티법의 골자는 그동안 모호했던 가상화폐의 법적 지위와 규제 관할권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상품의 현물 시장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증권형 가상화폐는 증권거래위원회가 감독하도록 나눕니다. 거래소와 중개인, 수탁기관, 그리고 중개 기관 없이 프로그램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탈중앙화 금융까지 연방 규제 체계 안으로 들여 소비자 보호와 거래 감시 기준을 적용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가치를 법정화폐에 연동해 변동성을 줄인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정부의 감독 범위도 정의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규제법이지만, 가상화폐를 처음 제도권 금융 상품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산업 활성화 법안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미국 정부윤리청 재산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한 해에만 22억 달러, 약 3조 원이 넘는 소득을 올렸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이 가상화폐 관련 사업 수익이었습니다. 가족이 소유한 가상화폐 기업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에서 5억 8,800만 달러, 온라인 인기를 기반으로 가치가 형성되는 코인인 '$트럼프'에서 6억 3,600만 달러, 스테이블코인 홀드코 지분 매각으로 1억 9,700만 달러를 각각 거뒀습니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그룹 부회장과 차남 에릭 트럼프 트럼프그룹 부사장도 규제 완화를 배경으로 가상화폐 사업에서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78년 제정된 미국 연방 윤리법은 대통령에게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처분하라는 의무 규정을 두지 않습니다. 공화당 지도부는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밈코인 발행을 제한하고 각 주 법무장관에게 집행권을 주는 수정안을 냈지만 흐름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가상화폐 보유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처분을 의무화하는 이행 장치를 요구했고,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상원 은행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의원은 표결 전 연설에서 "노동자 가구들이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수십억 달러의 가상화폐 이익을 챙기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마크 워너(버지니아) 의원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표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비트코인은 장중 5% 이상, 이더리움은 7% 이상 하락했습니다. 코인베이스 주가는 10.10% 급락했고, 비트코인 84만 5,000개를 보유한 기업 스트래티지 주가도 5.36% 떨어졌습니다. 규제법의 부결이 곧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시장이 이 법안을 규제가 아니라 제도권 진입의 신호로 읽어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남은 일정을 달력에 놓고 보면 상황이 분명해집니다. 상원은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음 달 5일부터 휴회에 들어갑니다. 의원들이 복귀하는 11월 9일부터 연말까지 수정안에 극적으로 합의하지 못하면, 법안은 내년 1월 3일 120대 의회 회기가 시작되는 동시에 자동 폐기됩니다. 워싱턴 정가에서 올해 안 통과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는 이유입니다. 이 말은 곧, 법안에 담겼던 거래소·수탁기관에 대한 연방 차원의 소비자 보호와 거래 감시 기준도 함께 보류됐다는 뜻입니다. 찬성 49표와 반대 50표 사이에 멈춘 것은 산업 활성화 조항만이 아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