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조 가입 여부가 명단에 올랐다 부서명, 이름, 사번. 그리고 노조에 가입했는지 여부.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이 정보가 한 장의 명단으로 정리됐습니다. 명단을 만든 쪽은 회사가 아니라 노조 집행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집행부는 조합원들에게 자신들을 선처해 달라는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지부는 전날 상임집행위원회를 열고 최승호 위원장 등에 대한 선처 탄원서 서명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노조는 16일부터 조합원 전자서명에 들어갔습니다. 목표는 약 3만 명입니다. 온라인 전자서명 업체에 지급할 비용으로는 약 2,000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조합비로 운영되는 노조 예산입니다.
최 위원장을 포함한 초기업노조 집행부 6명은 최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송치 이후 다른 노조인 삼성전자 노동조합 동행이 이들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모았고, 소속 조합원 1만 5,000명이 제출했습니다. 그다음이 15일 초기업노조의 의결과 16일 서명 착수입니다. 동행노조는 1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인근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탄원서가 탄원서를 부른 순서입니다.
집행부가 받는 혐의의 초점은 명단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임직원의 노조 가입 여부를 정리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부서명과 성명, 사번 등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한 혐의를 받습니다. 어떤 정보를 모았는지와 함께, 그 정보를 볼 권한이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입니다. 노조 가입 여부까지 붙어 정리됐다는 점이 '블랙리스트'라는 표현이 따라붙은 이유입니다.
초기업노조는 반도체(DS)부문, 동행노조는 완제품(DX)부문 조합원을 주축으로 합니다. 두 노조는 성과급 격차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부문에 따라 성과급이 다르게 책정되고, 조합원 구성 역시 부문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번 사안은 형사 사건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부문 간 처우 격차를 둘러싼 대립이 놓여 있습니다.
초기업노조는 동행노조 조합원 1만 5,000명이 허위 사실을 담은 엄벌 탄원서를 제출한 만큼 이에 대한 조직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조합원들이 낸 예산 2,000만 원을 들여 집행부 자신에 대한 선처를 호소한다는 점에서 '셀프 선처'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명을 요청하는 쪽과 선처를 받을 쪽이 같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검찰 수사와 이후 절차에서 가려질 부분입니다.
회사 시스템에 담긴 내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주체는 회사만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에서 임직원의 부서명·성명·사번을 열람한 혐의를 받는 쪽은 노조 집행부였습니다. 앞으로 확인할 일정은 두 가지입니다. 집행부 6명의 혐의에 대한 검찰 판단, 그리고 18일 예정된 동행노조 집회입니다. 부서명과 이름, 사번이 적힌 그 명단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도 그 과정에서 드러날 부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