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키운 웨이퍼 회사를 팔고, 유리에 5900억을 넣는다 SK㈜는 지난 7월 SK실트론 지분 70.6%를 두산에 2조 3000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LG에서 사들인 지 9년 만에 글로벌 3위 웨이퍼 기업으로 키워낸 회사입니다. 같은 해 SKC는 1조 1671억 원을 새로 조달해, 그 절반가량을 아직 양산되지 않은 소재에 넣기로 했습니다. 파는 쪽도 반도체, 사는 쪽도 반도체입니다.
17일 SK에 따르면 SKC는 올해 1조 1671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습니다. 회사가 새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끌어오는 방식입니다. 이 가운데 약 5900억 원, 확보 자금의 절반이 향후 3년에 걸쳐 유리기판 사업에 투입됩니다. 집행도 이미 시작됐습니다. SKC는 이달 4일 미국 자회사 앱솔릭스가 추진하는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2810억 원을 출자하기로 결의했습니다. 3년치 계획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 첫 단계에서 나간 셈입니다.
같은 그룹 안에서 SK에코플랜트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원래 이 회사의 반도체 관련 사업은 공장의 설계·조달·시공을 일괄로 맡는 것이었습니다. 2024년 메모리·모듈 회사 에센코어와 산업용 가스 회사 SK에어플러스를 자회사로 편입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증착용 프리커서를 만드는 SK트리켐, 식각 가스의 SK레조낙, 블루 도판트의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 포토 소재의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가 잇따라 계열사로 들어왔습니다. 최근에는 SK에코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 역량까지 합쳤습니다.
유리기판은 반도체 칩을 올려놓는 판입니다. 지금 쓰이는 것은 플라스틱을 기반으로 한 유기 소재 기판입니다. 유리기판은 이보다 열을 받아 늘어나는 정도가 낮고, 표면이 더 평평합니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판이 넓어지고 칩을 촘촘히 쌓을수록 미세한 휘어짐과 팽창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리기판은 대면적·고집적 반도체 패키지에 적합한 차세대 기판으로 꼽힙니다. 계열사를 한데 모은 이유도 비슷한 계산으로 읽힙니다. 공장을 지어주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 공장이 돌아가는 데 필요한 가스와 소재까지 함께 대는 구조입니다.
납득이 잘 안 되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SK실트론은 반도체용 웨이퍼를 만드는 회사이고, SK가 9년에 걸쳐 세계 3위까지 키운 곳입니다. 반도체에 힘을 싣는다면 가장 먼저 붙잡을 것 같은 자산입니다. SK는 이 지분을 넘기며 1조 5000억 원이 넘는 매각 차익을 거두게 됐습니다. 원문에서 이 대금의 용처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반도체 투자 확대를 위한 마중물로 쓰일 개연성이 높다는 수준으로 언급됐습니다.
앱솔릭스는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만든 유리기판을 두고 고객사 신뢰성 평가와 기술검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양산 단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SKC 관계자는 "계획된 자금을 단계적으로 투입해 양산 준비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트론 매각을 보는 시선은 다릅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덩치가 커진 반도체 웨이퍼까지 무조건 끌어안기보다는 사업별 경쟁력과 투자 우선순위에 따라 자본을 보다 효율적인 곳으로 배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습니다.
5900억 원의 성패를 가를 지점은 발표 자료가 아니라 조지아 공장입니다. 고객사 신뢰성 평가와 기술검증을 통과해야 양산으로 넘어가고, 통과하지 못하면 3년치 투자 계획은 계획으로 남습니다. 앞으로 유리기판 관련 소식을 볼 때 '투자 규모'가 아니라 '고객사 검증 통과 여부'를 기준으로 읽으면 진척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9년 키운 3위 기업을 넘긴 돈이 어디로 가는지도 아직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것은 2조 3000억 원의 매각 결정, 그리고 1조 1671억 원의 조달 결정, 두 가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