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은 6월에 멈춰 있습니다 지난 9일, 두바이유 현물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 선을 넘어섰습니다. 정부가 국내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정했던 6월 말에는 같은 유종이 70달러를 밑돌았습니다. 그런데 주유소 가격표는 거의 그대로입니다. 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 사이에 벌어진 간격은 재정으로 메워지고 있습니다. 그 금액이 올해만 5조 원을 넘습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18일 "최근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서민 물가 부담과 민생 안정에 무게를 두고 석유제품 최고가격은 동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정부가 휘발유· 경유의 판매 상한 가격을 정해두고, 그 때문에 생긴 정유사 손실을 재정으로 보상하는 제도입니다. 동결 배경으로는 최근 환율 급락이 유가 충격을 완충한 점,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 수출 원유에 붙이는 공식 판매가격 프리미엄이 마이너스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함께 지목됐습니다. 재정경제부는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6%까지 올랐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제도의 물가 억제 효과가 0.5%포인트라는 계산입니다.
최고가격이 설정된 6월 말, 싱가포르거래소 현물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70달러를 밑돌았습니다. 이달 들어 중동 불안이 커지면서 2일 100달러를 넘었고, 9일에는 120달러 선을 돌파했습니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도 100달러를 웃돌고 있습니다. 물가 쪽 숫자도 이미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9.64로 전년 동월 대비 7.9% 올랐습니다. 4월 이후 계속 전년 대비 7~8%대입니다. 정부가 이달 말 종료 예정이던 휘발유·경유 유류세 한시 인하를 11월 30일까지 두 달 더 연장한 것도 명절 앞 물가를 붙잡아두기 위한 조치입니다.
정부는 올해 약 6개월간 최고가격제를 유지한다고 보고 추가경정예산에 손실보상 예산 4조 2,000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이후 내년 예산안에는 4분기 손실보상 몫으로 1조 4,497억 원을 따로 잡아뒀습니다. 올해 세 개 분기 동안 이 제도를 운영하는 데만 5조 6,500억 원이 들어간다는 추산입니다. 문제는 예산을 잡아두고도 정산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7월께 정유사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지급 기준을 두고 업계와 이견이 남아 1차 정산(3월 13일~6월 30일분)도 아직 끝내지 못했습니다.
가격 통제의 목적 하나는 부담 완화지만, 그 대가로 소비 신호가 흐려집니다. 4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115만 5,606㎘로 전년 동월 대비 7.4% 줄었습니다. 당시 최고가격 자체가 ℓ당 1,900원대여서 소비자가격이 크게 뛰었고, 소비량이 그 신호에 맞춰 줄어든 것입니다. 그런데 5월 이후 최고가격이 큰 변동 없이 유지되면서 소비량 감소 폭은 1~2% 범위에서 정체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고정되자 줄이던 소비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셈입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가격 그 자체뿐 아니라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이 연동됐다면 소비량도 이에 맞춰 줄었을 텐데 가격을 억누르다 보니 제대로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률적으로 가격을 낮추기보다 유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에 한해 지원하는 방식이 나았을 것"이라며 "난방 수요도 생기는 겨울철에는 가격 발견 기능이 더욱 망가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산 기준도 여전히 평행선입니다. 정유사들은 국제 시장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기회비용까지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회계상 원가에 근거해 영업 손실을 메워주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유소에서 보는 가격은 국제 시세가 아니라 정부가 정한 상한선입니다. 휘발유·경유 유류세 한시 인하는 11월 30일까지 두 달 연장됐고, 최고가격은 현재 동결 상태입니다. 즉 앞으로 유가가 더 오르더라도 국내 가격은 정부의 연장 여부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크게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제도가 손질되면 그 시점에 체감 가격이 한꺼번에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업계로부터 1차 정산 자료를 받고 연말까지 보상액을 심사한다는 방침입니다. 6월 말 70달러에 맞춰 정해진 그 상한선이 난방 수요가 몰리는 겨울까지 버틸 수 있는지가 다음 확인 지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