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국이 쓰는 LNG, 넷 중 하나는 호주에서 옵니다 "지정학적 분쟁과 공급망 병목이 상시화된 국면에서는 단순 수입 계약만으로 위기를 넘기 어렵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가 18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같은 날 유럽연합 역내 가스 저장시설 충전율은 65%,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겨울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동에서 출발하는 배는 이미 줄어 있습니다.
18일 에너지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되며 중동 주요 송유관 파손과 수송로 항행 중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타르 라스라판 가스전은 공습 여파를 받았고, 카타르에너지는 공급 불가항력 조치를 연장했습니다. 불가항력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처럼 계약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사유가 생겼을 때 공급 의무를 면제받는 조항입니다. 계약서에 물량이 적혀 있어도 배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글로벌 전력 수요 급증이 겹쳤습니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거래 규모는 320억 달러로, 10여 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유럽의 저장시설 충전율이 65%에 그친 상황에서, 겨울을 앞두고 유럽이 공격적인 현물 매입에 나설 경우 아시아 국가들과의 물량 쟁탈전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현물은 필요할 때마다 시장에서 사 오는 방식이라, 가격이 뛰면 비용이 그대로 늘어납니다. 지금은 가스전 개발권 자체에 프리미엄이 붙는 국면입니다.
SK이노베이션 E&S는 2012년부터 호주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참여해 매장량 평가부터 설비 건설까지 개발 전 과정을 주도했습니다. 현재 지분은 37.5%로, 호주 산토스가 50%, 일본 제라가 12.5%를 갖고 있습니다. 이 지분을 바탕으로 연 130만 톤 규모의 LNG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가스전은 탐사에서 상업 생산까지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고 대규모 자금과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대신 지분으로 받는 물량은 시황과 무관하게 정해진 원가 구조를 따릅니다.
공급 위기의 진원지가 중동인데, 한국의 중동 의존도는 이미 낮아져 있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집계 기준 올해 1~7월 국내 LNG 수입 비중은 호주가 28.4%로 가장 크고, 말레이시아 17.8%, 미국 14.3%, 캐나다 8.4% 순입니다. 카타르는 6.5%로 줄었습니다. 호주발 물량은 전쟁 중인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습니다. 한국가스공사도 'LNG 캐나다' 지분 5%를 확보해 연 70만 톤을 들여오고 있는데, 캐나다 서부 연안발 화물 역시 태평양을 직항합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최근 미국 애팔래치아 마르셀러스 분지 가스전을 5억 5,000만 달러, 약 7,360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LNG로 환산하면 연간 약 100만 톤을 직접 확보하게 됩니다. 시장에서는 이 가스를 향후 국내에 도입할 가능성을 보고 있지만, 도입 계획이 확정된 단계는 아닙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미국에 한화호라이즌 USA를 세워 LNG 조달과 트레이딩, 물류 최적화를 맡겼습니다. 미국 벤처글로벌과 장기 구매 계약을 맺고, 2029년 가동 예정인 한화에너지 여수LNG 발전소에 연료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바로사 가스전을 두고 "민간 기업이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장기 물량을 쥔 비중동권 자산이라는 점에서 공급망 다변화와 자원 안보에 모범 사례로 꼽힌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다른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자원과 운송로를 동시에 확보하는 선제적인 접근과 밸류체인 확장이 확실한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발언은 모두 물량을 얼마나 확보했는지만이 아니라, 그 물량이 어디를 지나오는지를 함께 본다는 점에서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LNG 공급 위기는 가격표보다 항로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어느 나라에서 오는지, 그 배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지를 함께 보면 같은 뉴스가 다르게 읽힙니다. 올해 1~7월 한국이 들여온 LNG에서 카타르 비중은 6.5%였고, 호주·말레이시아·미국·캐나다를 합치면 68.9%였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유럽 저장고가 65%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올 때, 확인할 것은 계약서에 적힌 물량만이 아니라 그 배가 지나오는 바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