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이 기존 안을 계속 고집하면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수도권 법원 부장판사가 이번 대법관 인선 국면을 두고 한 말입니다.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는 그동안 조용히 진행돼 왔습니다. 이번에는 추천이 공개적으로 반려됐고, 대법원은 아직 다음 카드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에 대해 "사안을 신중히 검토 중이며,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발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으로 각각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청와대에 서면으로 제청했습니다. 청와대는 열흘 뒤인 지난달 28일 두 명 중 김 부장판사에 대한 임명동의안만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손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합의 없이 제청이 이뤄지는 등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로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했습니다.
노 전 대법관은 지난 3월 퇴임했습니다. 후임 최종 후보자는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4명으로 추려졌습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후보군이 정해진 뒤에도 약 7개월 동안 제청 자체가 없었습니다. 지난달 18일의 제청도 통상적인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은 물밑 협의를 거친 뒤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서면으로 제청이 이뤄졌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반려 당일 이번 주 중 공식 입장을 내겠다고 했지만, 부친상 등 개인 사정으로 검토가 늦어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합니다. 제청권과 임명권 중 어느 하나가 다른 쪽의 부속물이라는 규정은 없습니다. 한 수도권 법원 부장판사는 "임명권과 제청권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권한을 행사하며 견제와 균형을 이루라는 헌법적 취지로 봐야 한다"며 "양측 모두 고유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한 고위 법관은 "헌법에는 제청권과 임명권만 규정돼 있고, 반려 이후의 후속 절차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며 "법리적으로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서면 제청과 재제청 요구 모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인선 과정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는 시각이 다릅니다. 법원 안팎에서는 청와대의 1순위 후보가 김민기 고법판사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법원은 김 고법판사의 남편인 오영준 헌법재판관과의 이해충돌 우려를 이유로 난색을 보였고, 박순영 고법판사 등을 절충안으로 제시하다 최종적으로 손 부장판사를 낙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실제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해도 국민의 눈에 특정 후보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비치는 자체가 문제"라며 "대법관 인선은 공정한 적임자를 청와대와 사법부가 상호 협조해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선택은 다시 조 대법원장에게 넘어갔습니다. 거론되는 방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손 부장판사를 제외한 기존 후보자 3명 중 한 명을 다시 제청하는 것입니다. 대법관 공백을 빠르게 메울 수 있고,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도 기존 후보군에서 다시 고르라는 메시지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다만 이 경우 청와대가 원하는 인물이 나올 때까지 반려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법원 안팎에서 나옵니다. 다른 하나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새로 구성하는 방안입니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0명으로 추천위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장의 제청,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세 단계를 모두 거쳐야 완성됩니다. 이 중 하나가 멈추면 자리는 비어 있게 되고, 그 자리에서 다뤄질 사건의 심리도 함께 미뤄집니다. 지금 멈춰 있는 지점은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기 전, 첫 단계입니다. 또 다른 수도권 법원 부장판사는 "기존 추천위는 이미 활동을 종료했으므로 새 추천위를 꾸려 처음부터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양측이 한 발씩 물러나 제3의 인물을 찾으려는 노력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습니다. 3월에 비워진 한 자리를 누가 채울지는, 이번 주 대법원의 발표에서 가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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