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스케일러 대부분이 실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크리스토퍼 우드 제프리스 글로벌 주식전략총괄이 서울에서 한 말입니다. 같은 자리에서는 한국 반도체가 과거보다 주기의 영향을 덜 받는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습니다. 두 이야기는 한 행사에서 나란히 제시됐습니다. AI와 반도체를 놓고 투자 기회와 위험 요인을 함께 짚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KB증권이 6월 9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버서더 서울에서 개최한 '2026 KB금융그룹 코리아 컨퍼런스' 현장입니다. 이날부터 11일까지 열리는 행사의 국내외 참석자는 지난해의 약 2배인 800명으로 늘었고, 60여 명의 전문가가 연사로 나섭니다. 150여 개 국내 기업과 11개 일본 기업이 투자자와 만나 투자·협력 기회를 모색합니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은 "한국은 중요한 전환점에 있으며 지금이 바로 한국 시장을 주목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이 행사는 2017년 한국 기업과 국내 기관투자자를 연결하는 기업설명 행사로 출발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참석 규모가 1년 만에 두 배가 된 것은 한국 시장을 향한 관심이 어디까지 넓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행사의 성격도 국내 IR에서 국내외 투자자가 한국 시장의 투자 기회를 논의하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김신 KB금융지주 글로벌 투자전략가는 "반도체 산업은 좀 더 안정적이고 주기의 영향을 덜 받는 시장 구조로 과거와 다른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변화의 핵심은 장기 공급계약(LTA)입니다. 대규모 AI·클라우드 투자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필요한 물량을 장기간 미리 확보하는 계약입니다. 과거 메모리 산업은 수급 변화에 따라 가격과 실적이 크게 출렁였지만, 일정 수준의 수요를 먼저 잡아두면 단기 가격 변동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김 전략가는 한국 반도체 업체가 TSMC처럼 실적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높여갈 경우, 주가가 순자산의 몇 배에 거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PBR 격차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작업하는 에이전틱 AI가 본격 확산될 경우 메모리 수요가 현재의 약 3배, 휴머노이드 같은 피지컬 AI 단계에서는 10배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반면 신규 생산시설이 실제 공급 증가로 이어지기까지는 3~4년이 걸립니다. 이 때문에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8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AI 투자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약 40%에서 내년 57%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고,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이 비중을 68%로 예상합니다. 김 센터장은 내년을 기점으로 AI 산업의 이익 중심이 GPU에서 메모리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같은 구조에는 반대편이 있습니다. 김 전략가는 AI 반도체 수요가 소수 대형 하이퍼스케일러에 집중돼 있는 만큼, 이들의 투자 축소가 다시 업황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장기계약이 실적 가시성을 높여주는 그 구조가, 수요처가 줄어들 때는 같은 힘으로 반대 방향 으로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한국 증시 자체의 높은 변동성도 추가 재평가를 막는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는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기보다 시장 변동성과 투자자들의 집단 심리 영향이 크다고 본다"며 "레버리지 ETF가 없었다면 상당히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랠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드 총괄의 경고는 더 강했습니다. 그는 "19세기 후반 철도 광풍과 유사한 대규모 자본 파괴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시나리오"라고 밝혔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 규모는 올해 7230억 달러에서 내년 9870억 달러, 약 1320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드 총괄은 시장이 이 투자 확대를 언제까지 용인할지가 AI 사이클의 핵심 변수라고 봤습니다. "시장이 어느 순간 AI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자금 지원을 끊는 순간이 이 스토리의 진짜 종착점"이라면서도 "아직 그 시점은 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온 낙관과 경고는 같은 숫자를 근거로 삼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입니다. 그 투자가 계속되면 장기계약과 메모리 수요가 실적을 받쳐주고, 줄어들면 두 축이 함께 흔들립니다. 그래서 지켜볼 것은 메모리 가격 그래프가 아니라 하이퍼스케일러의 투자 계획과 그 자금을 대는 시장의 태도입니다. 우드 총괄의 문장으로 돌아가면, 종착점의 신호는 수요가 아니라 자금 지원이 끊기는 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