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카드가 올해 2월 발행한 3년 만기 채권의 금리는 3.75%였습니다. 9월 10일 발행이 예정된 같은 만기 채권의 금리는 4.45%입니다. 일곱 달 사이 0.7%포인트가 올랐습니다. 이 시장에 다음 달 초부터 3조 원이 들어올 전망입니다. 돈의 출처는 은행도 연기금도 아닌 반도체 회사입니다.
1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NH아문디·신한·우리·미래· 한투·KB자산운용 6개사에 입찰제안요청서를 발송했습니다. 입찰제안요청서는 자금을 맡길 운용사를 고르기 위해 제안서를 요청하는 공식 문서입니다. 6개사 모두 선정되는 것이 유력한 상황으로 전해졌고, 이 경우 운용사마다 5,000억 원씩 총 3조 원을 위탁받아 다음 달 초부터 채권 투자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자금은 신용등급 AA0급 이상 카드채 매입에 우선 쓰일 것으로 보이며, KB국민카드·신한카드·우리카드·하나카드 등 은행계 카드사가 발행한 채권이 주요 대상으로 정해졌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6~7월에도 은행계 카드사뿐 아니라 삼성·현대·비씨카드가 발행한 채권을 담기 위해 조 단위 현금을 집행했습니다. 상반기까지는 매주 조 단위로 채권을 사들였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19일 4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발표한 직후 채권 투자도 소강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주주환원에 대규모 자금을 쓰기로 한 만큼 채권 매입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집행하기는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채권 투자를 담당하는 인력이 소수여서 인력을 확충하기까지 일시적인 수급 공백이 생긴 것 아니냐는 평도 있었습니다.
규모의 배경에는 현금이 있습니다. 상반기 연결 기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현금·현금성 자산은 87조 9,579억 원으로 집계됩니다.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34조 2,68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조 1,044억 원의 약 8배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과 미국주식예탁증서 상장으로 금융권 예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현금이 쌓였고, 시장에서는 앞으로도 곳간에 현금이 빠른 속도로 축적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SK하이닉스의 채권 투자 반경이 계속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카드채 금리가 오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7~8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3.00%까지 인상한 뒤 카드채 발행 금리는 종전 3%대에서 4% 중후반까지 올랐습니다. 그동안 카드채를 사가던 기관 투자자들도 이탈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사주 매입·소각에 40조 원을 쓰기로 한 회사가 그 직후 3조 원을 다시 채권에 넣는 셈인데, 시장은 이를 채권 매수세가 대규모 투자 기조로 재전환된 신호로 보고 있습니다. 기관이 빠진 자리에 들어오는 자금이라는 점에서, 고공행진하던 발행 금리를 진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금액보다 기간입니다. 올해 6~7월 채권을 사들일 당시에는 만기 2~3년 채권에 집중했지만, 이번에는 최장 4년 만기 채권도 담을 수 있다는 의사를 운용사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3~4년 동안 자금이 묶여도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면서 "조건만 맞으면 민간 대기업 회사채를 매입하는 시나리오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는 업계의 관측이며, 회사가 확정해 발표한 계획은 아닙니다.
카드채 발행 금리는 카드사가 돈을 빌려올 때 내는 값입니다. 2월 3.75%였던 하나카드 3년물 금리가 9월 4.45%가 된 흐름, 그리고 다음 달 초 3조 원이 이 시장에 들어오는지 여부를 함께 보면 됩니다. 금리가 어디서 멈추는지는 아직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지켜볼 대상입니다. 숫자를 확인하려면 각 카드사가 공시하는 채권 발행 내역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의 발행 금리 자료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에서 번 돈이 카드사의 조달 창구로 흘러가는 구간, 지금 그 지점에서 금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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