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부담을 영세한 중소 수탁기업이 일방적으로 떠안는 것은 공정한 시장경제에 어긋난다." 이은청 중소벤처기업부 상생협력정책국장이 9일 밝힌 말입니다.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어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원가는 올랐지만, 그 부담을 나누기로 한 약정서는 발급되지 않았습니다. 한두 곳의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조사받은 기업 중 4개사에서 23건이 적발됐습니다.
중기부는 9일 플라스틱 용기 납품 거래를 대상으로 납품대금 연동제 이행 여부를 직권 조사한 결과, 커피 프랜차이즈와 식료품 제조업체 등 4개사에서 총 23건의 상생협력법 위반 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적발된 곳은 식료품 제조업체 2곳과 커피 프랜차이즈 2곳입니다. 중기부는 위반 정도에 따라 개선요구와 벌점 2점 부과,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 부과, 교육명령 등의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과태료 1000만 원은 이번 조사에서 부과된 최대 금액입니다.
조사는 두 단계로 진행됐습니다. 중기부는 플라스틱 용기 수요가 많은 식료품 제조업과 음료 제조업, 커피 프랜차이즈 등 3개 업종의 위탁기업 15개사를 대상으로 우선 서면조사를 했습니다. 이후 법 위반이 의심되거나 서류 제출이 부실한 기업, 거래 중인 수탁기업이 많은 기업 등 7개사를 추려 현장조사와 수탁기업 설문조사를 병행했습니다. 납품을 받는 쪽의 서류만 보지 않고,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직접 물은 것입니다. 그 결과 7개사 중 4개사에서 위반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번 조사의 배경에는 원료 가격이 있습니다. 최근 중동전쟁 여파로 국제유가와 함께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에틸렌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중소업체의 원가 부담이 그만큼 커진 것입니다. 이 부담을 어느 한쪽이 다 지지 않도록 만든 장치가 납품대금 연동제입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면 그 변동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일을 맡기는 위탁기업과 납품하는 수탁기업이 미리 약정을 맺는 제도입니다. 상생협력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중기부는 이 제도가 현장에서 취지에 맞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집중 점검했습니다.
제도는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적발 유형을 보면 가장 많은 것이 '없음'이었습니다. 23건의 내용은 약정서 지연 발급 5건, 연동 약정서 지연 발급 6건, 연동 약정서 미발급 12건입니다. 미발급 12건은 전체 23건의 절반을 넘습니다. 늦게 준 것이 아니라, 원자재 가격 변동을 반영하기로 하는 약정서 자체를 만들지 않은 경우가 가장 많았다는 뜻입니다. 약정서가 없으면 나프타 가격이 얼마나 오르든 납품단가를 조정할 근거가 남지 않습니다.
이은청 중기부 상생협력정책국장은 "대·중소기업이 원재료 부담을 함께 나누는 거래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납품대금 연동제 이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조사가 신고를 받아서가 아니라 중기부가 직접 나선 직권조사였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수탁기업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도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연동 약정서 발급은 위탁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법상 의무입니다. 이번에 적발된 23건 중 12건이 미발급, 11건이 지연 발급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약정서를 늦게 준 것만으로도 벌점과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됐습니다. 원료 가격이 오르는 국면에서 약정서 한 장의 유무는 곧 원가 부담을 누가 지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원가는 올랐는데 납품값이 그대로였던 이유가, 상당수는 그 한 장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