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유조선 승조원들에게 먼저 배를 떠나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8일(현지 시간) 이란 원유 수출의 핵심 거점인 하르그섬 인근에서 유조선 5척을 파괴했습니다. 같은 날 반대편 홍해 쪽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남부 도시 4곳이 드론과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았습니다. 중동의 원유 수송로 두 곳이 하루 사이에 함께 흔들렸습니다. 국제유가는 이튿날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습니다.
8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남부 아브하·카미스무샤이트·지잔·나지란 4개 도시를 드론과 탄도미사일로 공격했습니다. 공격 대상에는 카미스무샤이트의 사우디 공군기지와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에너지 시설이 포함됐습니다. 현지 당국은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73명이 다쳤고, 일부 석유 시설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가동이 중단됐다고 밝혔습니다. 사우디 측도 후티 거점에 보복 공격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로이터는 이번 공격을 올해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후티의 전선이 가장 크게 확대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후티는 그동안 홍해 입구인 바브엘만데브해협에서 사우디 선박 운항을 압박해왔습니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홍해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좁은 물길입니다. 이번에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 본토의 생산 시설을 직접 겨냥했습니다. 호르무즈해협 쪽에서는 미국이 5일 이란 유조선 3척을, 8일에는 5척을 공격했습니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이틀 동안 미 해군 함정을 두 차례 탄도미사일로 공격하려 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습니다.
전쟁 이전 하루 약 1,800만 배럴이던 중동 산유국의 원유 수출량은 현재 하루 1,100만 배럴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루 700만 배럴이 수출길에서 빠진 셈입니다. 호르무즈해협 통과 물량이 급감한 상태에서, 그동안 유가 상승을 억제해온 대체 수송로인 홍해 쪽 사우디 시설까지 공격받았습니다. 시장이 반응한 것은 지금 끊긴 물량만이 아닙니다. 공급 차질이 길게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가격에 반영됐습니다.
IRGC는 9일 호르무즈해협의 '금지·위험구역'을 통과하려던 선박 10척을 공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 가운데 2척은 미국 선박이고 8척은 유조선입니다. IRGC는 이와 별도로 해협을 지나는 선박 10척을 추가로 겨눴다고 공개했습니다. 요르단 알아즈라크 인근의 미군 사용 기지로는 탄도미사일 20발을 발사했고, 요르단은 18발을 요격해 인명 피해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IRGC는 미군이 운용하던 대형 자율무인잠수정 '다이브-LD'를 나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기뢰 탐지와 해저 지도 작성이 가능한 수중 드론입니다. 다만 미 국방부는 고장 난 구형 장비이며 기밀 소나나 레이더는 탑재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 시각 9일 오후 4시 20분께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2.1% 오른 배럴당 100.02달러를 터치했습니다. 다만 전날에는 장중 상승분을 일부 되돌려 97.92달러에서 거래를 마쳤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9일 94달러대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캐나다·가이아나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속하지 않은 산유국의 생산 증가와 중국의 대규모 원유 비축이 아직은 브렌트유의 100달러 돌파를 억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골드만삭스는 걸프 지역 원유 생산이 전쟁 이전보다 하루 400만 배럴 낮은 수준에 머물 경우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공급 차질이 올해 말까지 이어지면 브렌트유가 95~120달러 범위에서 거래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다만 주요 에너지 기반시설이 파괴되는 광범위한 확전으로 번질 경우 최고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두 전망 모두 확정된 가격이 아니라 각 투자은행이 제시한 조건부 시나리오입니다.
유가 급등은 미국 금융시장도 압박했습니다. 8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18%,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58%, 나스닥지수는 0.32% 하락했습니다. 고유가가 물가를 다시 밀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9월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확률은 59%로 반영됐습니다. 페드워치는 금리선물 가격을 바탕으로 기준금리 변동 확률을 산출하는 지표입니다.
이번 국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두 개입니다. 하나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 선 위에서 유지되는지, 다른 하나는 페드워치에 반영된 9월 금리 인상 확률이 59%에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입니다. 유가와 금리가 같은 방향으로 붙어 움직이는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미군이 유조선 승조원에게 퇴선을 요구한 하르그섬 앞바다는 이란 원유 수출의 핵심 거점입니다. 이 지역과 홍해 쪽 사우디 시설의 가동 상황이 두 지표를 함께 흔드는 변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