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올랐는데 금값은 안 내렸다 “전쟁과 금리 부담에도 전기동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의 진단입니다. 전기동은 전선과 배관에 주로 쓰이는 정제 구리를 말합니다. 9일(현지 시간)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이 구리 값은 장중 톤당 1만 4858.5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오른 것은 구리만이 아니었습니다.
10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9일(현지 시간) 기준 3개월물 전기동은 톤당 1만 4767.50달러 수준에서 거래됐습니다. 장중에는 1만 4858.50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LME는 구리·아연 같은 비철금속의 국제 기준 가격이 형성되는 거래소입니다. 같은 날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 구리도 파운드당 6.85달러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귀금속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COMEX 12월물 금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0.19% 내린 트로이온스당 4452.10달러였지만, 1년 전 같은 시기(3827.90달러)와 비교하면 16.3% 높습니다. 트로이온스는 귀금속 거래에 쓰는 무게 단위로 약 31.1그램입니다.
구리는 올해 3월 톤당 1만 1929.50달러까지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지금 가격은 그 저점보다 23.8% 높은 수준입니다. 아연은 상승 폭이 더 큽니다. 전날 0.76% 오른 톤당 4052.50달러로, 3월 말 저점인 3042달러와 비교하면 33.2% 급등했습니다. 귀금속에서는 주도권이 바뀌었습니다. 은은 이달 들어 온스당 60달러 중후반대를 유지하며 9일 68.05달러에 거래됐습니다. 백금은 전날 3.55% 오른 1919달러를 기록한 뒤 이날 1894.40달러였습니다. 은과 백금의 상승률이 금을 크게 웃돌면서, 금에 집중됐던 상승세가 귀금속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입니다.
같은 랠리처럼 보이지만 배경은 갈립니다. 금은 중동 지역의 군사적 충돌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와 달러 약세가 가격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구리는 공급 쪽 사정이 가격을 자극했습니다. 미국이 정제 구리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구리 실물 물량이 미국 안으로 몰렸고, 그 결과 다른 지역에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졌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며 중장기 수요 확대 기대도 붙었습니다. 아연 강세의 배경으로는 주요 광산의 생산 차질로 현물 공급이 빠듯해진 점이 지목됩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금리입니다. 미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 규모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되며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4.84% 수준까지 올랐습니다. 2023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금리 상승은 통상 금에 불리한 조건입니다. 금은 보유하는 동안 이자를 주지 않기 때문에,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채권 수익률이 오르면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집니다. 그런데도 가격은 버텼습니다. 중동발 지정학적 불안과 달러 약세,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금리 부담을 상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전기동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며 “금속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를 떠받쳤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나머지 비철 품목들도 이에 연동돼 동반 상승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개별 금속의 수급이 아니라 구리가 만든 심리가 시장 전체를 움직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동안 국내 자금도 움직였습니다. ETF CHECK에 따르면 9일 기준 최근 1개월간 ‘ACE KRX금현물’에 651억 원이 순유입됐습니다. ‘KODEX 금액티브’ 144억 원, ‘PLUS 금채권혼합’ 129억 원, ‘SOL 국제금’ 86억 원, ‘TIGER KRX금현물’ 41억 원 등을 합해 5개 상품에 총 1051억 원이 들어왔습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세 가지가 메탈 랠리의 지속 여부를 가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동 정세, 미국의 정제 구리 관세 정책, 그리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입니다. 금을 움직이는 축은 지정학과 달러, 구리를 움직이는 축은 관세와 AI 인프라 수요라는 점도 함께 기억할 만합니다. 같은 방향으로 오르고 있어도 꺾이는 이유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9일 장중 사상 최고치를 다시 쓴 톤당 1만 4858.50달러는, 금리가 2023년 11월 이후 최고로 오른 날 기록된 숫자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