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품 회사의 돈줄이 마르고 있다 10일 하루, 외국인 투자자는 코스닥 시장에서 1조 756억 원어치를 팔았습니다. 역대 최대 순매도 규모입니다. 같은 날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서울경제 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코스닥 시장 전반에 혜택을 줘 시장 분위기가 개선되면 간접적으로 벤처를 육성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 중에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회사가 상당수 있습니다. 시장이 흔들리면 이들이 돈을 구하는 통로도 함께 흔들립니다.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증시 시가총액에서 코스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92.53%, 금액으로는 5,802조 9,466억 원입니다. 코스닥은 7.47%, 468조 7,707억 원에 그칩니다. 두 시장을 합친 판에서 코스닥이 가진 몫은 열 중 하나가 채 안 되는 셈입니다. 유가증권시장으로의 쏠림이 그만큼 극심하다는 뜻입니다.
코스닥의 시총 비중 7.47%는 1998년 연평균 수준인 6.98%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사이 한국의 주력 산업은 바뀌었고, 반도체 공급망을 떠받치는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로봇·자율주행처럼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인공지능 기업들이 새로 생겨났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의 몸집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코스닥은 혁신기업의 성장 통로 역할을 해왔지만, 시장 자체의 비중은 27년 전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코스닥 위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순서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 상당수가 코스닥에 상장돼 있어, 시장이 위축되면 자금 조달 여건이 먼저 나빠집니다. 조달이 어려워지면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쓸 여력이 줄어들고, 그만큼 중견기업으로 커 나가는 속도도 늦어집니다. 코스닥 활성화를 주가 부양이 아니라 제조업 성장 기반을 넓히는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올해 상반기 벤처캐피털 투자 규모는 8조 5,000억 원입니다. 벤처캐피털은 초기 기업에 투자해 성장한 뒤 지분을 되팔아 수익을 내는 투자사를 말합니다. 투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창업 → 성장 → 회수 → 재투자 및 추가 상장'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관투자가 유입이 저조하고 코스닥 시장에 대한 신뢰가 낮아, 혁신기업에 공급된 자금이 성장을 거쳐 다음 투자로 되돌아오는 구조가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박 회장은 벤처캐피털 투자 규모를 반기 50조 원, 연간 100조 원으로 키워 혁신기업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실적의 여섯 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또 우량 기업이 코스닥에 계속 남아 있도록 파격적인 지원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장 분위기가 개선되면 벤처를 간접적으로 육성하는 효과가 생기고, 국가 전체 산업에도 상당한 플러스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박 회장은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 민관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코스닥 지수는 개인 투자자의 손익만 보여주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이 다음 해 연구개발비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를 가리키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코스닥 관련 정책 발표를 볼 때, 세제나 상장 유지 요건 같은 항목이 '우량 기업을 시장에 남게 하는가'라는 기준에서 다뤄지는지 확인해두면 좋겠습니다. 10일 하루의 1조 756억 원 순매도는 그 기준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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