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가방이 3개월 만에 103만 원 내려갔습니다 면세점에서 5,500달러에 팔리는 디올 레이디백 미니가 있습니다. 가격표의 숫자는 3개월 전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원화로 계산한 값은 838만 원에서 735만 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약 103만 원이 내려갔습니다. 가방이 바뀐 게 아니라 환율이 바뀌었습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주요 수입 브랜드의 면세점 가격이 시중 백화점보다 높은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났지만 최근 속속 원상 복귀되고 있습니다. 디올 레이디백 미니은 3개월 전 환율(1,524.5원)로 환산하면 838만 원으로, 백화점 정가 750만 원보다 88만 원 비쌌습니다. 10일 환율(1,336.1원)을 적용하면 735만 원, 백화점보다 15만 원 싼 값이 됩니다. 면세점 판매가 580달러인 보테가베네타 명함 지갑도 같은 흐름입니다. 원화 환산가격이 3개월 전 약 88만 원에서 현재 약 77만 원으로 내려갔습니다. 백화점 판매가 82만 원보다 낮아졌습니다.
환율은 올해 7월까지 1,500원을 넘어섰다가 1,300원대로 내려왔습니다. 6월 초 1,56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10일 1,330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사이의 변화입니다. 고환율 국면에서는 면세점의 수입품 가격이 백화점보다 비싸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환율이 내려오자 그 역전이 되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내국인 고객이 체감하는 가격이 낮아지면서 면세 쇼핑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면세점의 수입품 가격표는 달러로 붙습니다. 그래서 달러 표시가격이 그대로여도 환율이 내려가면 내국인이 실제로 내는 원화 금액은 줄어듭니다. 반대로 환율이 올라가면 같은 상품이 갑자기 비싸집니다. 국산품은 구조가 반대입니다. 면세점은 국내 브랜드 제품을 원화로 공급받은 뒤 달러 판매가격을 매기는데, 이때 적용하는 환율을 기준환율이라고 합니다. 기준환율이 낮아질수록 달러 기준 판매가격은 높아지는 구조입니다. 15만 원짜리 국산 화장품에 기준환율 1,500원을 적용하면 100달러지만, 1,350원에서는 111달러가 됩니다.
환율 하락은 외국인 고객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보유한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한국에서의 구매력이 줄어듭니다. 여기에 기준환율 인하로 국산 화장품 등의 달러 표시가격까지 올라갑니다. 국내 면세점 4사(롯데·신라·신세계·현대)는 국산 브랜드 제품에 적용하는 기준환율을 달러당 1,400원에서 1,350원으로 50원 내립니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10일부터, 신세계면세점과 현대면세점은 11일부터 새 기준환율을 적용합니다.
기준환율은 원래 자주 건드리는 값이 아니었습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기준환율 조정 주기는 3~4년에 한 번 수준일 정도로 환율 안정성이 유지됐다"며 "최근 변동 폭이 커진 데다 방향 전환도 급격해 주기가 이례적인 수준으로 짧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흐름은 이렇습니다. 업계는 지난해 6월 1,400원이던 기준환율을 1,350원으로 내렸다가, 이후 세 차례에 걸쳐 50원씩 올렸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초 1,500원에서 1,400원으로 내린 뒤 한 달 만에 다시 1,350원으로 조정했습니다. 4개월 간격이던 조정 주기가 한 달로 단축된 셈입니다.
업체들이 우려하는 것은 환율의 방향보다 속도입니다. 고환율일 때 사들인 재고를 환율이 내린 지금 팔아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 우려가 나옵니다. 기준환율 인상에도 부담이 있었습니다. 한 관계자는 "환율 상승기에는 면세점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백화점이나 올다무(올리브영·다이소· 무신사)로 옮겨 가는 현상이 커지는 만큼 기준환율을 높여 국산품 가격 경쟁력을 방어하는 성격이 있었다"며 "다만 이는 마진 압력을 안게 되는 만큼 이제는 급격했던 인상을 정상화하는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환율이 높든 낮든 안정적으로 움직여야 예측이 가능한데 변동 폭이 확대되면 부담이 커진다"며 "재고를 언제 얼마나 확보하는 게 적정한지가 현재 MD들의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면세점 가격은 달러로 붙어 있고, 그 아래에서 원화 금액이 움직입니다. 수입 브랜드는 환율이 내려가면 내국인이 내는 원화 값이 줄고, 국산품은 기준환율이 내려가면 달러 표시가격이 올라갑니다. 두 가지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면세점 가격을 볼 때는 백화점 정가와 나란히 놓고 원화로 환산해 비교해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3개월 전 백화점보다 88만 원 비쌌던 가방이 지금은 15만 원 싸졌습니다. 가격표의 숫자는 그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2025년 7월 10일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