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미리 찾아 현금으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재정학회장인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가 정부의 내년 재정 운용 계획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 본예산보다 106조 원 늘어납니다. 그런데 정부는 같은 시기에 그와 거의 같은 규모의 현금을 새 기금에 쌓아둘 계획입니다.
2025년 6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대응기금 긴급진단 토론회에서 김우철 교수는 정부 계획을 "중대한 정책적 오류"라고 규정했습니다. 미래대응기금 162조 3,000억 원 가운데 사업비와 국채 신규 발행 감축분을 뺀 104조 4,000억 원은 당장 쓰지 않는 여유자금으로 적립됩니다. 반면 정부의 실질적인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3조 1,000억 원입니다. 적자 규모는 3조 원인데 빚은 106조 원 늘고, 그 돈에 맞먹는 현금은 기금에 남는 구조입니다.
내년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42조 8,000억 원입니다. 같은 해 R&D 예산 39조 5,000억 원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2030년에는 53조 3,000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입니다. 저금리 시기에 발행한 국채의 만기가 고금리 시기와 겹치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국가채무에 적용되는 평균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2030년 이자비용이 약 70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이자가 불어나면 국방과 R&D 같은 핵심 지출이 뒤로 밀립니다.
기금의 재원은 '추가세수'입니다. 직전 3개 연도 세수 실적으로 만든 기준선을 넘는 세입을 뜻합니다. 문제는 기준선이 계속 올라간다는 점입니다. 세수가 급증한 2027년 실적이 기준선에 반영되는 2029년부터는 신규 재원이 사실상 사라집니다. 김 교수는 이 기금을 "2년 쓰고 버리는 대일밴드"라고 표현했습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원의 정의는 신조어에 기대 모호하고, 지출 목적은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에 여유자금까지 아우를 만큼 넓으며, 통제 장치는 느슨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3일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현행법의 '국채를 우선 상환할 수 있다'는 문구를 빼고, 연중 세입예산보다 더 걷히는 초과세수를 국채 상환이나 기금 전출에 쓸 수 있도록 한 내용입니다. 국채 상환에 부여됐던 문언상 우선순위가 사라지고, 기금 전출이 같은 급의 선택지가 되는 셈입니다.
김 교수는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정부안 12.8%에서 7.8%로 낮추자고 제안했습니다. 지출을 깎는 긴축이 아니라 증가 폭을 5%포인트 줄이는 방안입니다. 이전·현금성 지출과 금융성 출자 등 26조 5,000억 원을 조정하고 일부 신규 현금급여 도입 시기를 늦추면 정부안보다 약 36조 원을 덜 쓸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이 경우 관리재정수지는 3조 1,000억 원 적자에서 33조 1,000억 원 흑자로 바뀝니다. 2028년에도 증가율을 5.4%로 관리해 20조 원 흑자를 낸 뒤, 2년간 모은 53조 원가량으로 빚을 먼저 갚자는 구상입니다. 황상현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미집행 여유자금을 대폭 축소하고, 추가 세수의 최소 50% 이상을 신규 적자국채 발행 축소와 기존 국채 상환에 강제 배정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법 문구 하나입니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초과세수를 국채 상환에 먼저 쓴다는 문구가 사라집니다. 개정안의 심사 경과와 조문 변경 내용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미리 뽑아둔 현금을 어디에 쓸지, 그 규칙이 지금 국회에서 정해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