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삼성전자가 나올 통로가 막혔다 "우량 벤처기업들이 코스닥시장에 많이 상장해도 코스피로 옮겨가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한 말입니다. 스페이스X 같은 혁신기업을 선제적으로 발굴해 투자해온 그가 지목한 문제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시장 자체였습니다. 벤처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가 돈을 회수하는 통로, 코스닥의 이야기입니다.
기사에 정리된 집계를 보면, 코스닥시장에서 공모액 1000억 원 이상 기업공개(IPO)는 2023년 3분기 파두(1923억 원) 이후 4건에 불과합니다. 삼양컴텍·리브스메드·세미파이브·채비인데, 이마저 겨우 1000억 원을 넘긴 규모였습니다. IPO는 비상장 기업이 주식시장에 처음 주식을 팔아 자금을 모으는 절차입니다. 벤처기업이 큰돈을 조달할 수 있는 가장 큰 창구가 2년 넘게 사실상 비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달랐습니다. 카카오게임즈가 3840억 원, HK이노엔이 5969억 원, 더블유씨피가 4320억 원을 코스닥 상장으로 조달했습니다. 지금은 이 정도 무게감의 상장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시야를 더 넓히면 격차가 더 선명합니다. 1996년 개장 이후 30년간 코스닥에서 공모액 1조 원을 넘긴 기업은 2017년 셀트리온헬스케어(1조 88억 원) 단 한 곳뿐이었고, 이 법인마저 2023년 셀트리온 3사 합병으로 소멸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의 시가총액 비중은 92.53%로 코스닥을 압도합니다. 자금과 관심이 유가증권시장으로 쏠리면서, 코스닥 우량 기업마저 코스피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빨라졌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올해까지 26년간 코스닥 상장사 48개가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습니다. 코스닥에 남을 이유가 약해지면, 새로 들어올 기업도 줄어듭니다.
같은 기간 해외는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스페이스X는 6월 나스닥 상장으로 750억 달러(약 100조 원)를 조달했습니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는 7월 커촹반 상장으로 666억 위안(약 13조 2000억 원)을 확보했습니다. 커촹반은 상하이 증권거래소가 첨단기술 기업과 스타트업을 위해 따로 만든 시장입니다. 국제금융센터 집계로 커촹반과 선전증권거래소의 벤처 시장 촹예반의 IPO 규모는 2024년 377억 위안, 2025년 634억 위안, 올해 1~8월 1133억 위안으로 늘었습니다. 세계경제포럼 보고서 기준 지난해 말 글로벌 벤처 투자 시장 규모는 3조 4000억 달러(약 4559조 원)입니다.
엇갈리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벤처캐피털(VC)이 투자금을 현금으로 되돌리는 방식 중 IPO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VC의 투자 회수 방식 중 IPO 비중은 2022년 24.3%에서 2025년 상반기 37.9%로 올랐습니다. 회수 의존도는 높아졌는데 대형 상장은 사라진 상태입니다. 업계에서 비상장 기업을 오래 키워 코스닥에서 회수한다는 구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박 회장은 해법으로 제도적 유인을 제시했습니다. 코스닥 상장사에 대한 법인세 감면이나 대주주 분리과세 같은 인센티브를 정부가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미국 나스닥의 시가총액이 42조 달러를 넘고 S&P500 기업 시총이 60조 달러 수준이라며, 코스닥과 비교하면 비율 격차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코스닥 업계 관계자는 코스피처럼 기관투자가 유입을 늘릴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시 제도 이야기도 나옵니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경우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와 장기 공급계약을 맺는데 이를 공시할 수단이 없다"며 실적을 알릴 기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코스닥이 살아나는지 보려면 지수보다 두 숫자를 보는 편이 빠릅니다. 공모액 1000억 원 이상 IPO가 몇 건 나오는지, 그리고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 상장하는 기업이 몇 곳인지입니다. 두 수치는 한국거래소 공시와 상장 통계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이 통화에서 말한 "골든타임"의 성패도, 결국 이 두 숫자가 방향을 바꾸는지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