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정 장비업체 HPSP는 최근 한 달 사이 48.88% 올랐습니다. 주성엔지니어링도 같은 기간 45.88%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 4월 11일 오전, 반도체 장비 종목 다섯 개가 동시에 5% 넘게 빠졌습니다. 한 종목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1일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현재 한미반도체는 전 거래일 대비 7.71% 급락한 23만 3,500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넥스틴은 6.97% 떨어진 3만 2,050원에 손바뀜되는 중입니다. 피에스케이는 6.60%, 원익IPS는 5.39%, 테스는 5.23% 하락했습니다. 대형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나란히 5% 넘는 하락률을 기록한 것입니다. 같은 시각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70.19포인트(2.42%) 하락한 6,863.73, 코스닥은 14.78포인트(1.77%) 떨어진 822.14를 나타냈습니다.
이 종목들은 원래 오르던 쪽에 있었습니다. 인공지능(AI) 호황 기대감이 반도체 장비로 옮겨오면서, 한 달 만에 40%대 상승률을 낸 종목이 나왔습니다. 개별 종목만이 아닙니다. 반도체 장비 종목을 묶어 따라가도록 설계된 상장지수펀드(ETF)도 같은 흐름을 탔습니다. 'KIWOOM K-반도체북미공급망'은 최근 한 달 동안 32.72% 올랐고, 'KODEX AI반도체핵심장비'는 같은 기간 31.29% 상승했습니다. 한 달 사이 30%가 오른 자리에서, 하루 사이 5~7%가 빠진 셈입니다.
이날 하락세는 거시경제 환경 악화와 차익 실현 매물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중동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가와 금리가 동반 상승했고, 글로벌 투자 심리는 위축됐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당장의 이익보다 먼 미래의 성장에 값이 매겨진 종목이 먼저 부담을 받습니다. 한동안 투자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자, 그동안 변동성이 컸던 종목 위주로 매도세가 집중되는 모습입니다. 빠르게 오른 순서대로 빠르게 빠졌다는 뜻입니다.
이날 거래소는 두산테스나, 티씨케이, 리노공업 등을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지정된 종목은 하루 동안 정규장과 시간외 시장에서 공매도 거래가 막힙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팔고 나중에 사서 갚는 거래로, 주가가 내릴 때 이익이 납니다. 거래소는 특정 종목에 공매도가 몰려 낙폭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공매도 거래대금 증가 배율 2배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이 조치를 적용합니다. 매도 한 축을 하루 동안 차단해 둔 상태에서도 장비 업종 전반의 약세는 이어졌습니다.
같은 시각 코스피 하락률은 2.42%, 코스닥은 1.77%였습니다. 반면 장비 종목들의 하락률은 5~7%대였습니다. 지수 하락폭의 두 배를 넘는 낙폭입니다. 원문에서 확인되는 것은 개별 기업의 실적이 나빠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장 전체가 밀릴 때 변동성이 큰 종목이 더 크게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오르는 국면에서 이 종목들이 지수보다 훨씬 큰 상승률을 냈던 것과 같은 성질입니다.
한 달에 30~40% 오른 종목과 지수를 같은 기준으로 보면 안 됩니다. 같은 방향, 같은 원인이라도 움직이는 폭이 다릅니다.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은 하루 단위로 적용되는 조치이고, 거래소가 지정 종목을 공시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 종목이 여기에 들어갔는지, 언제까지 적용되는지는 거래소 공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달 48.88%라는 숫자와 하루 7.71%라는 숫자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성질을 양쪽에서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