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다른 국가기관이나 정치권력, 사회 세력의 부당한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2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한 말입니다. 특정 사안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 발언이 나온 날은, 청와대가 대법관 후보자 한 명을 다시 제청해달라고 요청한 지 2주가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11일 대법원에서 열린 제12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강조했습니다. "부당한 간섭 없이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재판할 때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국가기관, 정치권력, 사회 세력을 나란히 거론했습니다. 사법부 독립을 말하면서 '정치권력'을 직접 언급한 대목은, 그 자체로는 원론적인 표현입니다. 발언에 대법관 제청이나 청와대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18일 조 대법원장은 노태악·이흥구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두 명을 임명 제청했습니다.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입니다. 열흘 뒤인 지난달 28일 청와대는 손 후보자에 대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재제청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로부터 이날까지 약 2주, 대법원에서는 별도의 후속 조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제청이 이뤄진 지난달 18일부터 따지면 3주가 넘게 지난 상태입니다.
임명 제청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공식 추천하는 절차입니다. 대통령은 제청된 후보자를 국회에 임명동의안으로 제출합니다.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대법원장의 제청이 먼저 있어야 대통령의 제출이, 그다음에 국회의 동의 절차가 열립니다. 청와대가 요청한 재제청은 이미 제청된 후보자를 수용하지 않고 다른 후보자를 새로 추천해달라는 것입니다. 대법원장이 새 제청을 하지 않고, 청와대가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으면 절차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같은 날 제청된 두 명 가운데, 청와대가 국회 제출을 보류하고 재제청을 요청한 대상은 손 후보자 한 명입니다. 조 대법원장의 11일 발언은 사법부 독립이라는 원칙을 반복한 내용이고, 새로운 결정을 밝힌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목된 이유는 발언의 내용보다 시점에 있습니다. 대법원과 청와대가 대법관 제청 문제로 갈등을 이어가는 국면에서,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청에 응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대법관 재제청은 추천위원회를 존중해 최대한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입장을 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추천위원회는 대법관 후보자 추천 절차에 관여하는 기구입니다. 청와대 쪽 발언이 강조한 것은 '속도'입니다. 대법원장 발언이 강조한 것은 '부당한 간섭의 배제'입니다. 같은 날 나온 두 발언은 같은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지점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어느 쪽도 상대 기관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분기점은 두 가지 문서입니다. 하나는 조 대법원장이 새 후보자를 재제청하는지, 아니면 기존 제청을 유지하는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청와대가 손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지입니다. 대법관 임명은 국회 동의를 거치기 때문에, 국회로 임명동의안이 넘어가는 시점이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호가 됩니다. 사법부 독립을 말한 11일의 기념식 이후, 대법원과 청와대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움직이는지를 보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