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혜 기대감은 유효하지만 옥석가리기는 깐깐해질 것입니다." 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가 변압기 업종 인수합병 시장을 두고 한 말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변압기 회사는 사모펀드들이 줄을 서던 매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가격표를 다시 들여다보는 쪽이 늘었습니다. 회사가 바뀐 게 아니라, 실적 전망치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2026년 9월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캑터스프라이빗에쿼티가 추진 중인 동미전기공업 인수 거래의 종결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캑터스PE는 올해 6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협상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하며 자금 조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자금을 대는 기관투자가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회사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몸값을 계산하는 기준이 흔들린 것이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동미전기공업의 몸값은 당초 5,0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됐습니다. 2025년 상각전영업이익의 약 10배입니다. 상각전영업이익은 영업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한 수익 지표로, 인수합병에서 기업가치를 몇 배로 사는지 계산할 때 쓰는 기준입니다. 문제는 2026년 실적이 전년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분모가 줄면 배수는 올라갑니다. 같은 5,000억 원을 그대로 적용하면 실제 배수는 약 20배 수준으로 뛰어오릅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비싸 보이는 착시가 생긴 셈입니다. 출자를 검토하던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신중론으로 돌아선 배경입니다. 캑터스PE는 거래 구조를 일부 변경하는 방식으로 자금 조달 전략을 다시 짜고 있습니다.
변압기 업계는 인공지능 특수를 맞으며 2023년 이후 실적이 급등했습니다. 코스닥 상장사 제룡전기의 매출은 2022년 861억 원에서 2025년 2,240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동미전기공업도 2023년 254억 원이던 매출이 2025년 말 1,003억 원까지 커졌습니다. 3년 사이 약 4배입니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 전력이 필요하고, 전력을 보내려면 변압기가 필요합니다. 이 논리가 통했던 시기의 실적을 기준으로 매물의 몸값이 매겨졌습니다. 지금 벌어진 시각차는 그 기준연도가 언제냐의 문제입니다.
실제 업황은 조정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제룡전기의 2026년 상반기 매출은 703억 원으로, 2025년 상반기 1,106억 원 대비 약 36%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65억 원에서 111억 원으로 약 70% 줄었습니다. 회사 측은 북미 배전변압기 시장의 경쟁 심화와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를 실적 하락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미국발 수요가 정점을 지나면서 경쟁자와 비용이 함께 늘어난 구도입니다.
실적 둔화는 이 업종에 먼저 투자한 운용사들의 기업가치 제고 전략에도 부담입니다. 2025년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국제전기를, 테넷에쿼티파트너스는 파워맥스를 각각 인수했습니다. IEN한창은 금융 자문사를 앞세워 소수지분 매각을 추진해왔습니다. 실적이 정점을 지난 국면이 길어지면 투자금 회수 시점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다만 IB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어나는 만큼 장기 전력 수요 기조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전력 인프라 전반에 대한 투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헬리오스PE는 산업용 케이블 업체 서울전선 인수를 앞두고 있고, 코스톤아시아는 전력기자재 업체 우진기전 인수를 최근 마쳤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가격이라도 어느 해 실적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10배'와 '20배'로 갈립니다. 기업가치 배수를 볼 때는 배수 숫자보다 기준연도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앞서 인용한 IB 업계 관계자는 옥석가리기가 깐깐해질 것이라며 "업체별 미국 현지 영업 기반과 변압기 라인업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업종 전체가 아니라 개별 회사의 판매 기반을 보게 됐다는 뜻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