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넘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주유소 가격표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휘발유, 경유 등 정제유 가격은 계속 안정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가격을 누르는 장치는 지금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14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102달러 안팎에서 거래됐습니다. 한 달 전인 지난달 14일에는 81~82달러 수준이었습니다. 30일 사이 20% 이상 오른 셈입니다. 상승의 배경으로는 중동 정세 불안이 꼽힙니다. 이달 10일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유전 지역에서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원유를 보내는 핵심 송유관이 피격됐습니다. 이 송유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원유를 홍해 쪽으로 옮길 수 있는 대체 수송로였습니다. 가동이 길게 멈추면 중동산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가격을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원래 걱정의 대상은 호르무즈 해협이었습니다. 이 좁은 해로의 재개방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그 우회로 역할을 하던 사우디 '동서 송유관'까지 피격된 것입니다. 주된 통로와 예비 통로가 동시에 불확실해진 국면입니다. 국내 대응은 지난 3월부터 이미 가동 중이었습니다. 정부는 3월 13일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도입했습니다. 그 뒤 국제 가격은 오르내렸지만, 국내 판매 가격의 상한선은 유지돼 왔습니다. 이달 중동 정세가 다시 흔들리면서, 반년 전에 만든 장치의 연장 여부가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최고가격제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국제 원유 가격이 올라도 정유사는 정부가 정한 상한 가격을 넘지 않게 판매하고, 정부는 그로 인한 정유사의 손실을 보전합니다. 소비자가 내는 값과 정유사가 부담하는 값의 차이를 정부가 나중에 메우는 구조입니다. 정부는 당초 6개월 운영을 전제로 약 4조 2,0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여기에 운임 지원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정유사가 대체 원유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운임 차액의 25%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정부는 이 비율을 100%까지 늘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상한선 아래 남는 격차입니다. 아시아 지역 석유제품 거래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과 국내 최고가격 사이에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업계는 이로 인한 누적 손실을 이미 5조 원대로 추산합니다. 정부가 6개월분으로 배정한 예산 4조 2,000억 원과 비교되는 규모입니다. 그런데도 1차 정산조차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손실 보상 범위와 원가 산정 기준을 놓고 정부와 정유업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격을 누른 결과는 매일 주유소에서 확인되지만, 그 비용의 계산서는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일각에서는 예산이 6개월분으로 편성된 만큼 최고가격제 시행이 이달 종료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중동 정세를 고려하면 제도 시행을 끝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시행 기간 연장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업계의 시각은 다른 쪽을 향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고가격제 시행 기간이 길어지면 업계는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이라며 "제도 시행을 종료할 수 없다면 보상과 관련한 논의라도 빨리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도를 멈추자는 요구보다, 정산을 앞당기자는 요구입니다.
지금 국내 주유소 가격이 국제유가와 따로 움직이는 것은 시장 상황이 아니라 제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격을 예상하려면 유가 시세보다 제도의 시행 기간을 봐야 합니다. 최고가격제는 3월 13일 시작됐고, 예산은 6개월 운영을 전제로 편성됐습니다. 연장 여부와 규모는 산업통상자원부 발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언급한 '안정'은 이미 진행된 결과이고, 5조 원대 추산 손실과 1차 정산은 아직 남은 절차입니다. 이 두 가지는 같은 제도의 앞면과 뒷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