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만에 처음, 구미 공장이 멈췄다 2026년 9월 16일 오전, 경북 구미사업장에 조합원 500여 명이 모였습니다. 파업 출정식이었습니다. LS전선 노조가 1989년 설립된 뒤 37년간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자리입니다. 이 장면은 구미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같은 날 포항과 광양의 제철소 라인도, 조선소 도크도 함께 멈춰 섰습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노총 LS전선 노동조합은 이날 구미사업장에서 조합원 500여 명이 참석한 파업 출정식을 열었습니다. 출정식에 오지 못한 인원까지 합친 조합원 800여 명은 구미와 강원 동해사업장에서 1시간씩 총 3차례 일손을 놓았습니다. 하루 전체가 아니라 정해진 시간만 작업을 멈추는 부분 파업입니다. 1989년 노조가 만들어진 뒤 37년간 이어져 온 무분규 기록은 이날로 끝났습니다.
이번 파업은 한 회사의 사정이 아니라 며칠 사이의 연쇄로 나타났습니다. 포스코 노조는 이달 9일부터 총 48시간 1차 부분 파업을 벌였고, 사측이 이후 진전된 합의안을 내놓지 않자 16일 오전 7시 포항·광양 일부 라인에서 총 120시간 규모의 2차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11일과 14·15일 하루 4시간이던 부분 파업을 16일부터 7시간으로 늘렸습니다. 한화오션 노조는 추석 이후 연대 파업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배경에는 반도체 대기업의 성과 보상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보상에 나서면서 노동계 전반의 눈높이가 올라갔고, 그 기준이 다른 업종의 임단협 테이블로 옮겨왔습니다. 임단협은 임금과 단체협약을 함께 다루는 연례 교섭으로, 임금 인상률과 복리후생 조건을 매년 노사가 정하는 자리입니다. 그간 분규 없이 협상을 끝내온 사업장까지 갈등이 번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원가 상승과 시황 둔화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LS전선은 올 상반기 매출 4조 5232억 원, 영업이익 2384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노조는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전력 인프라 호황으로 회사 실적이 성장한 만큼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회사는 구리 등 원자재 매입 부담과 2조 원대 북미 설비 투자 재원 마련 때문에 요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포스코는 상황이 반대입니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줄었습니다. 실적이 커진 곳과 꺾인 곳에서 같은 날 파업이 벌어진 셈입니다.
LS전선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6.5% 인상을 요구했고, 사측은 지난해 수준인 4% 인상을 고수했습니다. 성과급은 노조 3000만 원, 사측 850만 원으로 격차가 더 큽니다. 포스코 노조는 기본급 7.1% 인상과 격려금 600% 지급을, 사측은 기본급 2% 인상과 목표 달성 격려금 350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포스코 측은 노조 요구를 모두 받으면 보상 규모가 지난해의 2배인 1조 4000억 원에 이르러 과하다고 주장합니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기본급 14만 9600원 인상과 상여금 100% 인상을 요구했고, 사측은 기본급 11만 원 인상에 격려금 200%와 1050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기본급 인상액과 상여금 지급 방식 모두에서 이견이 팽팽합니다. 한화오션 노조는 사측의 기본급 9만 5000원 인상안을 거부한 뒤 전면 파업과 부분 파업을 번갈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갈등의 분기점은 인상률 자체보다 성과 보상의 기준입니다. 반도체 업계 보상이 비교 대상이 되면서, 실적이 오른 회사와 꺾인 회사가 같은 수준의 요구를 함께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확인할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포스코가 120시간으로 늘어난 2차 파업 이후 진전된 안을 내놓는지, 한화오션 노조가 예고한 추석 이후 연대 파업이 실제로 진행되는지입니다. 37년간 파업이 없었던 구미사업장의 출정식은 이 흐름의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