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하면 놀이공원은 열어놓았는데 아무도 놀이기구를 타지 않고, 나중에는 녹슬어가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자산운용사 대표의 말입니다. 거래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그 시간 동안 제대로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2026년 9월 14일, 한국 증시의 문은 실제로 더 오래 열렸습니다. 문제는 그 안의 놀이기구입니다.
한국거래소는 2026년 9월 14일 애프터마켓을 도입했습니다. 애프터마켓은 정규 거래시간이 끝난 뒤 운영되는 시간 외 시장입니다. 이로써 국내 주식시장의 하루 거래시간은 10시간 30분으로 늘어났습니다. 글로벌 거래소들이 거래시간 확대에 속도를 내는 흐름 속에서, 투자 기회를 넓히고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입니다. 해외 증시와의 시차를 줄인다는 점도 분명한 장점입니다. 다만 시행 초기부터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체감되는 건 주문 방식입니다. 정규장과 애프터마켓을 하나로 연결하는 '원보드' 체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규장에서 낸 주문은 오후 3시 30분 장 종료와 함께 효력이 끝납니다. 체결되지 않은 주문이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닙니다. 애프터마켓에서 거래하려면 오후 4시 이후에 주문을 새로 내야 합니다. 미체결 주문이 그대로 살아 있을 것으로 생각한 투자자라면 혼란을 겪을 수 있는 지점입니다.
정리하면 거래시간이라는 외형은 먼저 갖춰졌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는 아직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한국거래소는 2027년 말을 목표로 원보드 구축과 프리마켓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프리마켓은 정규장이 열리기 전에 운영되는 시간 외 시장입니다. 두 과제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정규장과 애프터마켓이 서로 끊어진 별개의 시장처럼 움직이게 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같은 종목을 두 번 주문해야 하는 기간이 당분간 이어지는 셈입니다.
거래 대상에서도 빈칸이 있습니다. 상장지수펀드(ETF)는 애프터마켓 거래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해외투자자들은 선택권이 제한됐다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반대 목소리는 운용 업계에서 나옵니다. 유동성공급자(LP)의 실시간 헤지와 충분한 유동성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래 대상부터 서둘러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동성공급자는 매수·매도 호가를 계속 제시해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 참여자입니다. 양쪽 논리가 맞서 있어 ETF의 애프터마켓 거래 시점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유동성도 숙제로 남습니다. 거래시간이 길어졌는데 참여자가 충분하지 않으면, 작은 주문에도 가격이 크게 출렁일 수 있습니다. 대외 여건도 우호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026년 9월 16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인상했습니다. 여기에 일본은행의 정책 변화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국내 증시로 유입되는 자금이 위축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거래시간 연장의 성패를 다른 나라보다 몇 시간 더 열었느냐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오후 3시 30분 이전에 낸 주문은 장이 끝나면 함께 사라집니다. 애프터마켓에서 거래하려면 오후 4시 이후에 주문을 다시 내야 합니다. 원보드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이 구조가 유지됩니다. 또 하나, ETF는 아직 애프터마켓에서 거래할 수 없습니다. 시간 외 거래 계획을 세울 때 종목이 대상에 포함되는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문은 오래 열렸습니다. 다만 놀이공원의 운영 시간만큼, 안심하고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갖춰졌는지도 함께 봐야 할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