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300억 원 이상을 빌리려면 영업점이 아니라 본점 승인이 필요합니다. 이 결정 권한이 지방으로 옮겨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 연구단체는 10년간 최대 41조 원의 국가경제 손실을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손실의 93%가 중소기업 금융에서 발생한다고 봤습니다.
17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는 IBK기업은행 노동조합의 의뢰로 '기업은행 본사 지방 이전 파급효과 종합분석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보고서는 본점을 지방으로 옮길 경우 연간 국가경제 순손실이 5조 8,814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전 지역에 유입되는 편익 3,661억 원을 이미 반영한 뒤의 수치입니다. 이 손실을 향후 10년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40조 9,900억 원입니다. 다만 이 수치는 확정된 결과가 아니라, 노조 의뢰로 수행된 연구의 추정치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보고서가 추정한 국가경제 손실 가운데 93%는 중소기업 금융 경로에서 발생합니다. 손실이 전 분야에 고르게 퍼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인 항목으로는 대규모 여신 심사 위축, 긴급 정책자금 집행 지연, 금융·제조업 연계 약화, 경영진 협력 활동 위축 등이 꼽혔습니다. 연간 5조 8,814억 원 가운데 대부분이 '기업이 필요한 시점에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온다는 계산입니다.
기업은행은 전국 영업점을 통해 예금과 대출 업무를 처리합니다. 하지만 3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여신은 본점 전결 사항입니다. 영업점이 아니라 본점이 최종 승인 권한을 갖는 업무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71%가 수도권에 있다는 점입니다. 본점이 지방으로 옮겨가면 현장 실사, 담보물 평가,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본부와 영업점 간 기능적 거리가 증가할 경우 현장 정보 전달이 줄거나 지체된다"며 "이는 신용 판단의 보수화와 여신 축소로 이어진다"고 밝혔습니다. 심사가 까다로워지고 대출 규모가 줄어든다는 설명입니다.
손실이 중소기업에만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업종별로는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도소매 및 상품중개서비스업, 자동차산업, 음식점·숙박서비스업, 전기장비업에 손실이 편중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런데 보고서는 "손실 상위 6개 업종의 손실 65%가 중소기업 밀집 부문에, 21%는 대기업 중심 부문에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협력업체 경로를 거쳐 대기업까지 타격이 번질 수 있어, 손실이 특정 규모의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업은행 자체 재무 손실은 10년간 최대 2조 4,000억 원으로 평가됐습니다. 신사옥과 정보기술 인프라를 포함한 이전 비용이 6,000억 원, 핵심 인력 이탈과 영업기회 손실이 1조 5,000억 원, 운영비용 증가가 3,000억 원입니다. 보고서는 "핵심 인력 이탈에 따른 전문성과 네트워크 약화는 곧 경쟁력 저하"라며 저원가성 예금 유치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조달 금리가 낮은 예금을 덜 모으게 되면, 이자를 더 줘야 하는 중소기업금융채권에 기대는 비중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배당은 10년 누적 7,896억 원 감소가 예상됩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을 합친 지분율 68.5%, 배당성향 32.9%를 적용하면 정부에 귀속되는 배당액은 최대 5,412억 원 줄어듭니다.
류장희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지방 이전의 긍정적 효과는 추상적인데 반해 부정적 효과는 구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금융산업과 기업은행의 특수성을 감안해 지방 이전의 부작용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습니다. 보고서가 노조 의뢰로 작성된 만큼, 이전을 추진하는 쪽의 편익 추정치와는 별도로 비교해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보고서에 반영된 이전 지역 유입 편익은 연 3,661억 원입니다.
이 논의의 핵심은 '어느 도시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가 언제 결정하느냐'입니다. 300억 원 이상 여신이 본점 전결 사항이라는 사실 하나가, 41조 원 추정치의 출발점입니다. 대규모 자금 조달 일정을 잡고 있는 중소기업이라면, 본점 심사 단계에서 현장 실사와 담보물 평가에 걸리는 기간을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실질적인 대비가 됩니다. 40조 9,900억 원은 확정된 손실액이 아닙니다. 노조가 의뢰한 연구가 내놓은 추정치이며, 앞으로 정부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른 수치들과 나란히 검증될 대상입니다.
보고서'(IBK기업은행 노동조합 의뢰), 2026년 9월 17일 금융계 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