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걸린 진단, 25시간으로 걷는 것이 불편해져 병원을 찾은 뒤, 원인 유전자를 확인하기까지 평균 8.9년이 걸렸습니다. 소뇌실조증 환자 가운데 그나마 원인이 밝혀진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여러 검사를 반복하고도 끝까지 이름을 붙이지 못한 환자도 있었습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17일, 이 과정을 하루 남짓으로 줄이는 검사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문장섭 교수와 서울의대 생화학교실 배상수 교수 공동 연구팀은 9월 17일, 유전자 속 특정 DNA 서열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반복되는 '반복서열 확장'과 관련된 유전자 부위 56곳을 한 번의 검사로 동시에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환자의 혈액에서 뽑은 DNA 5마이크로그램이면 검사가 가능합니다. DNA 추출 2시간, 분석 준비 5시간, 유전자 판독 18시간을 합쳐 총 25시간입니다. 검사를 여러 차례 나눠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소뇌실조증은 몸의 균형과 움직임을 조절하는 소뇌에 이상이 생겨 걷거나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질환입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유전자 속 특정 DNA 문자열이 지나치게 여러 번 반복되면서 생깁니다. 그런데 기존 유전자 검사는 DNA를 짧은 조각으로 나눠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조각이 짧으면 반복된 구간이 얼마나 길게 늘어났는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원인이 밝혀진 환자들조차 증상이 나타난 뒤 확진까지 평균 8.9년을 보냈습니다.
연구팀이 택한 방법은 세 단계를 잇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DNA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는 유전자 가위 'CRISPR-Cas9'으로 질환과 관련된 56개 유전자 부위만 골라 잘라냅니다. 다음으로 긴 DNA 서열을 조각내지 않고 그대로 읽어내는 '나노포어 시퀀싱' 기술로 그 구간을 읽습니다. 마지막으로 반복서열의 길이와 이상 여부를 자동으로 판독하는 소프트웨어 'STRiker'가 결과를 정리합니다. 읽어야 할 구간을 미리 좁혀두기 때문에, 긴 반복 구간을 끊지 않고 확인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최신 유전자 검사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한 소뇌실조증 환자 37명에게 적용했습니다. 이 가운데 12명, 32.4%에서 질병의 원인 유전자를 새롭게 찾아냈습니다. 검사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검사가 들여다보지 못한 영역에 원인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특히 12명 중 확인된 'PRNP' 유전자 이상은 아시아인에서 처음 보고된 사례입니다.
이 방식은 DNA를 인위적으로 늘리지 않고 원래 상태에 가깝게 읽습니다. 덕분에 염기서열 자체는 그대로인 채 유전자의 작동 여부를 조절하는 화학적 변형 상태까지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장섭 교수는 "여러 검사를 거치고도 원인을 찾지 못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진단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향후 반복서열 확장질환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술의 결과는 환자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이 가족까지 확인한 결과, 5개 가족에서 친척 6명이 같은 유전자 이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원인을 찾는 일이 가족 단위의 정보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원인을 모른 채 검사만 반복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검사가 어떤 유전질환을 대상으로 하는지 진료 과정에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8.9년이라는 기간은, 검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쌓인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