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250명이 한 명씩 불려간다] 8월부터 SK그룹 부회장 3명이 SK하이닉스 임원을 한 명씩 만나고 있습니다. 대상은 곽노정 대표이사를 제외한 사장단과 담당급 임원 250여 명 전원입니다. 특정 부문만 점검하는 방식이 아니라, 임원 전체를 차례로 앉히는 방식입니다. 재계에서는 이를 메모리 호황 이후를 겨냥한 조직 재점검으로 해석합니다.
17일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유정준 미주총괄 부회장과 서진우 중국사업총괄 부회장, 이형희 SK㈜ 부회장이 8월부터 SK하이닉스 임원 250여 명을 차례로 면담하고 있습니다. 부회장단은 현장 임원이 겪는 실무적 애로 사항과 구조적 개선 과제를 듣고, 리더십 코칭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진단 결과는 SK하이닉스에만 쓰이지 않습니다. 그룹 전체의 도약 전략에 반영된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입니다.
이 방식은 처음이 아닙니다. 최태원 회장은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한 직후, 적자에 시달리던 임원들을 독대하며 현장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대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 단위 연구개발과 시설투자를 집행했고, 이 투자가 이후 HBM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와 대역폭을 높인 AI용 메모리입니다. 인수 14년이 지난 지금, 같은 형태의 면담이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위상 변화는 숫자로 드러납니다. 17일 현재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은 1,274조 7,092억 원입니다. SK이노베이션(23조 5,660억 원)과 SK텔레콤(18조 8,156억 원)을 55배에서 70배 앞선 규모입니다. 실적도 2분기 매출 79조 3,187억 원, 영업이익 60조 5,426억 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과거 에너지와 통신 두 축으로 성장을 모색했다면, 지금은 SK하이닉스가 압도적인 원톱 계열사가 됐다고 평가합니다.
기존 두 축이 부진해서 뒤집힌 구도는 아닙니다.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영업이익은 3조 4,873억 원, SK텔레콤은 5,660억 원이었습니다. 적자가 아니라 흑자인데도 격차가 벌어진 것입니다. AI 투자에서도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낸드 자회사 솔리다임을 개편해 AI 투자·솔루션 법인 'AI컴퍼니'를 출범시키고 최대 100억 달러(약 14조 원)를 출자하기로 했습니다.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도 이 법인에 출자를 약정했습니다. HBM 시장 점유율도 2분기 매출 기준 50%로, 삼성전자(33%)와 마이크론(18%)을 앞선 1위입니다.
조직과 거점을 옮기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경기 이천과 분당에 있는 SK하이닉스 핵심 조직과 인력을 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 서린빌딩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꾸준히 검토되고 있습니다. 일정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SK그룹은 매년 하반기 열어온 기술 행사 'SK AI 서밋'을 올해는 건너뛰고, 내년부터 상반기에 열기로 했습니다. 매년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GTC와 연계해 행사의 격을 높이려는 판단으로 풀이됩니다.
주목되는 것은 시점입니다. 이번 면담이 내년 사업 계획 수립 시기와 겹쳤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SK 최고경영자 세미나는 11월 중순으로 잡힌 것으로 안다"며 "세미나 준비 기간을 감안하면 사장단 인사가 11월 초에 단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같은 관계자는 부회장단의 임원 전원 면담을 두고 "AI 반도체 독주 체제를 다지기 위한 전략적 진단이자 조직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정지 작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사 시기는 확정 발표가 아닌 관계자 전망입니다.
이 면담의 결과는 11월에 드러납니다. 11월 초로 예상되는 사장단 인사와 11월 중순 최고경영자 세미나, 그리고 내년 상반기로 옮겨진 AI 서밋 일정이 확인 지점입니다. SK하이닉스에서 어떤 조직이 새로 만들어지고 누가 어디로 배치되는지를 보면, 그룹이 AI 사업을 어느 쪽으로 끌고 가려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8월부터 한 명씩 방으로 들어간 임원 250명의 이야기가, 연말 조직도의 형태로 돌아오는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