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3만 5,000달러. 계약서에 적힌 금액입니다. 원화로 약 913억 원. 에스티팜이 2025년 한 해 올린 매출의 27.5%가 한 건의 공급 계약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을 맺은 상대가 누구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올해 세 번째로 반복된 일입니다.
18일 에스티팜은 미국에 있는 글로벌 바이오텍과 올리고 핵산 치료제 원료의약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계약 규모는 6,613만 5,000달러, 약 913억 원입니다. 에스티팜이 지금까지 체결한 올리고 핵산 원료의약품 계약 가운데 단일 계약 기준으로는 가장 큰 규모입니다. 원료의약품은 약의 효과를 내는 핵심 성분 자체를 말합니다. 완제품 알약이나 주사제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한 재료 단계의 물질입니다. 에스티팜은 이 재료를 직접 개발·생산해 제약사에 넘깁니다. 이번 계약 금액은 회사의 2025년 연간 매출 3,317억 원과 비교하면 27.5%에 해당합니다.
이번이 갑작스러운 한 건은 아닙니다. 에스티팜은 올해 1월 825억 원 규모의 올리고 핵산 원료의약품 수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두 달 뒤인 3월에는 897억 원 규모의 계약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9월에 913억 원입니다. 세 건 모두 직전 계약보다 규모가 컸습니다. 단일 수주 최대 기록이 여덟 달 동안 두 차례 바뀐 셈입니다. 공시 기준으로 올해 누적 수주 규모는 약 2,635억 원입니다. 지난해 연간 매출의 79%에 해당하는 금액이 올리고 핵산 원료의약품 한 품목군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수주는 계약 시점의 약속이고, 매출로 잡히는 시점은 공급 일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올리고 핵산 치료제는 짧은 길이의 유전물질을 이용해 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막는 방식의 약입니다. 기존 약과 작동 원리가 다르고, 생산 공정도 화학합성 의약품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가 공장과 공정 기술을 처음부터 갖추기보다, 이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생산 업체에 맡기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에스티팜 관계자는 "초기 개발 단계부터 공정·분석·변경허가까지 고객사 맞춤형 올인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변경허가는 이미 허가받은 약의 제조 방법이나 원료를 바꿀 때 규제기관에 다시 승인을 받는 절차를 말합니다. 개발 초기에 한 번 들어가면 허가 이후까지 관계가 이어지는 형태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공개되지 않은 항목이 있습니다. 계약 상대방이 어느 회사인지, 공급되는 원료가 어떤 질환을 대상으로 한 약에 쓰이는지입니다. 에스티팜은 "미국 소재 글로벌 바이오텍"이라고만 밝혔고, 적응증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앞선 1월과 3월 계약에서도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즉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금액과 품목군, 그리고 시점입니다. 이 원료가 실제로 어떤 약이 되어 언제 시장에 나올지는 공개된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에스티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글로벌 빅파마와 바이오텍 기업들과의 협력을 더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회사 측이 밝힌 계획이자 목표입니다. 반대로 회사가 말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이번 계약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공급되는지, 연간 매출에 어떻게 나뉘어 반영되는지, 고객사의 개발이 중단될 경우 계약이 어떻게 되는지입니다. 수주 규모와 실제 실적은 같은 숫자가 아닙니다.
이런 발표를 읽을 때 나눠서 볼 지점은 세 가지입니다. 확정된 계약 금액인지, 회사가 밝힌 목표인지, 아직 공개되지 않은 항목인지입니다. 이번 건에서 확정된 것은 913억 원이라는 금액과 계약 체결 사실이고, 목표는 협력 확대이며, 미공개는 상대방과 적응증입니다. 기업의 단일판매·공급계약 체결 내용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fss.or.kr)에서 회사명으로 검색해 원문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약 기간과 조건이 기재돼 있어 언론 보도보다 항목이 상세합니다. 리드에 적었던 6,613만 5,000달러라는 숫자도, 결국 그 공시 한 줄에서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