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적 수익만 보지 말고 미국에서의 경험을 어떻게 우리 산업 자산으로 남길지 고민해야 합니다." 김세진 법무법인 세종 통상산업정책센터장이 17일 한 자리에서 남긴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에 끌려다니는 상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나온 진단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 상황을 활용하면 제조업과 금융 산업을 한 단계 올릴 '축적의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1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경제 미래컨퍼런스 2026' 주제강연에서 장영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은 대미 투자를 축적의 기회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인 대미 투자 규모는 2000억 달러로 거론됩니다. 장 사장은 "현재 대미 투자 프로젝트 후보로 거론되는 사업들이 대개 대규모 에너지 플랜트 아니냐"고 짚었습니다. 후보로는 텍사스 엔시날의 액화천연가스 복합화력발전소와 대형 원전 건설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사업은 누적 건설 수익이 마이너스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은 이후 운영·유지보수 계약을 따내 장기 수익 기반을 마련한 사례로 언급됩니다. 운영·유지보수는 발전소 같은 시설을 지은 뒤 운영과 정비를 장기간 맡는 계약입니다. 건설 단계의 계산서와 사업 전체의 계산서가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장 사장이 지금 거론되는 대미 투자 사업을 이 사례에 겹쳐 본 이유입니다.
장 사장은 대규모 에너지 플랜트에 대해 "운영·유지보수 계약이나 금융 참여 과정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짓는 대가만이 아니라, 지은 뒤 오래 운영하고 자금 조달에 참여하는 몫이 따로 남는다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도 단순히 수익률만 따질 것이 아니라,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산업 측면의 실익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여도 중장기적으로는 숨은 가치가 있는 사업이 많다는 진단입니다.
그렇다고 현지 생산 요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장 사장은 "피지컬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소비 지역 인근에 로봇만으로 가동되는 다크 팩토리 등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경영 전략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다크 팩토리는 사람 없이 로봇만으로 돌아가는 완전 자동화 공장입니다. 그는 "우리가 얻는 것 없이 내주기만 하는 거래는 경계해야겠지만 생산의 현지화 자체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센터장은 우리 기업이 미국으로 생산 기반을 넓히면 더 큰 기회의 창이 열린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기업과 공동 연구·개발하거나 그들이 쌓아둔 지식재산권에 접근하게 되면 한국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재산권은 특허와 기술, 노하우 같은 지식 자산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말합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첨단 기술을 축적해 왔고 시장이 넓으며 규제가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이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현지 생산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장 사장은 "핵심 생산 역량은 한국에 남기면서 현지로 들어가 함께 성장하는 전략이 중요하다"며 "이 과정에서 국내 생산 시설의 생산성이 외려 오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대미 투자 소식을 볼 때는 투자 금액과 예상 수익률 외에 세 가지를 함께 확인해 보면 실익이 보입니다. 운영·유지보수 계약이 붙는지, 금융 참여 몫이 있는지, 공동 연구·개발과 지식재산권 접근 조건이 들어 있는지입니다. 수익률만 적힌 표에서는 보이지 않는 항목들입니다.



